韓国政治·한국경제

현대사 비화(1) -- '윤필용 사건'

雄河 2015. 12. 23. 21:09

〆〆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은 군의 최고 실세로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고 한다.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소속 군인들이 수도방위라는 명목으로 서울시내로 쏟아져 나와 시가지까지 군인들로 꽉 차 있었다나...뭐 불심검문, 그런 것도 했나 보다. 

박대통령이 그러한 윤필용의 대세력에 위협을 느껴, 드디어 손을 썼던 모양이다. 이것이 이른바 "윤필용 사건"이다. 이 사건을 주도했던 것은 "윤필용의 앙숙"인 박종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필용과 휘하세력은 군법회의에 처해지고 몰락하고 만다. 재산도 뺏긴 모양이다. 

어떤 휘하들은 강원도 해안선 지역으로 이동배치되는 좌천을 당하나, 그 곳 해안의 비행장에 내리자마자 체포당하고 강제전역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군인이 갑자기 의혹의 전역을 당하면, 그들의 남은 인생은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는 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때 박종규가 선심을 써서 살려준 한 정치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육사 11기의 그들(전-노)이었다고 한다.

全이 나중에 정권을 잡았을 때 윤필용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 全이 윤필용에게 어떤 '온정'을 베풀었던 흔적은 없다. 윤필용의 몰락한 생은그냥 그대로 비참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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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追想) --한신 제1군 사령관

 

한신 제1군 사령관은 전설적인 사령관으로서 그 명망이 높았다.

이북출신의 그는 삼팔선의 철조망도 설치했고, 그는 오로지 초지일관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군기도 철저하게 빈틈없이 잡았던 모양이다.

한신 장군은 정치에 참여하는 군인이거나, 미국에 빌붙어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정치인들을 무척 싫어하기도 했다.

이 한신장군이 제1군사령부가 있는 원주를 떠나 용산의 육군사령부(육군참모총장:서정철)에 가서 '호통'을 치고 '군기'를 잡았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제2군은 후방에서 민간인 통제 정도를 담당했다. 이곳에 배치되면 군인으로서의 미래는 사실상 보장이 없었다고 한다. 제3군은 나중에 생겼는데 서부전선을 담당했다고 한다. 12.12때 이건영 제3군사령관의 처신이 많이 세간에 회자되어 있다. 정승화의 지시가 떨어졌어도 이 3군사령관은 "엉거주춤"을 추면서 시간을 끌었다. 인간으로서의 이건영은 온후한 '매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군인으로서는 '춤'을 잘 추었던 모양이다. )  

 

한신 제1군사령관은 정석대로 갔다면, 제1군사령관→육군참모총장→국방부장관까지 갈수 있는 재목이었다고 한다. 아니, 대통령까지도 할 수 있는 인품, 성품, 능력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질 않는가? 한국정치가 한 인간의 올곧은 코스를 보장해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  한신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라고 요청을 받았다면, 그는 정작 거절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면모를 잘 알고 있는 한 분석통의 이아기이다. 그는 순수군인으로서 그 만큼 정치에 욕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 

 

 

 <사족(蛇足)> 박대통령이 언제 원주의 제1군사령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의 군인들은 최전선의 군인들이기 때문에 긴급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잠을 잘 때도 항상 실탄을 장전하고 자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도착 소식이 전해지면서 실탄을 빼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대통령은 음식, 식기 등도 청와대에서 직접 배달해온 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는 권력세계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비극적인" 장면이 아니겠는가?  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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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 : 2011-02-03 09:32

뉴스

'윤필용 사건' 연루자 재심서 38년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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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군 실세들이 쿠데타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잇따라 옷을 벗은 '윤필용 사건'의 연루자들이 38년 만의 재심에서 누명을 벗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는 부대운영비를 횡령하고 허가 없이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손영길 전 준장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손 전 준장을 비롯해 관련자들의 진술서는 모두 육군보안사 수사관들의 고문과 협박, 회유 등으로 작성됐으며 문제의 총기도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찾아내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습니다.

1973년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은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에게 "노쇠한 박정희 대통령 대신 후계자로 나서라"고 말했다가 쿠데타 모의 의혹을 사면서 군법회의에서 추종 군 인사들과 함께 횡령, 뇌물수수죄 등으로 1~15년의 징역형을 확정 선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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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3 18:32  추천 1 스크랩 0  댓글 (5) | 엮인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