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総合)-

니체와 동양사상 (6)

雄河 2015. 12. 23. 11:22
Graham Parkes(ed.) Nietzsche And Asian Thought

Nietzsche’s “Will to Power” and Chinese “Virtuality”(De):

A Comparative Study

- Roger T. Ames-


. 글에서는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 일반적으로 ‘virtue’ 번역되는 개념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니체는 심리적 속박(psychological moorings)으로부터 의지(will)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전제는 「심리적 의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the will of psychology does not exist at all)」는 것이었다. 語法상으로 “will” 主語 혹은 주체(subject) 필요하지만, 그에게 의지 존재와 현상의 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동력(impetus)으로 범주적인(categorical) 개념이었다. ‘ 난해한 개념으로 F.W. Mote 따르면 儒家나 墨家(the Confucians and Mohists)에게는 “virtue” 번역되지만, 道家에게는 힘의 일정한 질서(some order of power)’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2가지 범주로 구분하는 방식을 넘어서 생각해보면, 德은 외부로 확장되는 호의(favor) 보상(bounty)”이며, 또한 어떠한 반응(as a response)으로서 나오는 謝意(gratitude)” 개념이다. , 德은 어떠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efficient force) 동시에 결과(its effects) 포괄하는 것이라 있다.


. 道家 논의의 초점은 宇宙論에 있었는데, 이는 學問의 제일 원칙(a science of first principles)”이라는 추상적인 의미(the abstract sense) 아니라 맥락화의 예술(the art of contextualization)” 혹은 구성(composition)” 다루고 있었다. 여기에서 德은 이것과 저것사이의 끝없는 변화과정(the ceaseless process of change) 속에서의 상관관계(correlation) 말하는 것이었다. 한편 論語(the Confucian Analects)에서 德은 보다 윤리적 혹은 사회적(ethical and social) 개념으로 적용되고 있다.


. 德을 재검토 해보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존재(existence)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나 (a ceaseless and continuous process or field of change)이라 있다. 존재가 道이며, 이것이 상호의존적인 특성(interdependent particulars) 德을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의 세계(a single-ordered world) 속에 있는 우주(cosmos) 없다는 것이다. 2)‘무엇이 존재하고(what is)’ 어떻게 존재하고(how it is)’ 사이―즉, 물체(stuff) 존재의 질서(the order of existence)―의 가정된 차이(assumed distinction) 없다. 따라서 일정한 外樣(Appearance) 권하거나 왜곡하는 實在(Reality) 존재하지 않는다. 3)道는 物活論(hylozoistic)적인 개념이다.


.『說文; 说文: Shuo-wen』에서 德은 오르는 (to ascend, to climb, to arise)” 혹은 생겨나는 (to presence: : shēng) ”으로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德은 우주론적 차원(cosmological level)에서 存在의 과정에서 物活論적 특성의 상승(the arising of the hylozoistic particular)이라 있다. 莊子는 다음과 같이 道를 이야기 하고 있다. 「道는 德의 배치나 전개(the arrangement and display of de)이다. (life and growth) 德의 발현이며, (natural tendency: xìng) 인생이라는 과정의 천연재료(the raw ingredients of the process of birth, life and growth)이다. 性의 활동(the activity of natural tendency) 行한다 혹은 만든다(to do or to make: : : wéi)” 것을 뜻한다. 그러나 행함과 만듦(doing and making) 性과 결별할 경우에는 잃음(to lose: : shī)” 되고 만다. 어쩔 없는 (what is inevitable)에서 나오는 행위를 德이라 부를 있고, 자신(oneself) 전부 표현하는 행위를 타당한 질서(proper order) 있다. 모든 것은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과정(one’s own process of existence) 갖고 있다(無非我: 无非我: wú-féi-wŏ). 이런 식으로 이해할 경우, 어쩔 없음(inevitalbility) 자아표현(self-expression) 사이에는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there is no conflict).


. 나라 이전의 문헌에서 이후에 이르기까지 德은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우주론적 중요성(fundamental and consistent cosmological significance) 가진 것으로 보인다. 道家의 문헌에서는 존재의 과정에서 다양한 영역이나 (potency) 묘사하고 있다. 역동적인 과정 전부를 道라 있지만(field; 場의 차원), 개별화된 존재(individuated existents) 논의될 이러한 특성을 德이라 있다(focus 차원). 한편 유교의 세계관은 道와 기능적 等價性(functional equivalence) 지닌 (tian) 있었다.


. 이처럼 德은 道를 해석하는 수단이며, 道를 결정하고 특징짓는 것이다. 또한 德은 차별적(discriminatory)이기도 하지만, 통합의 원칙(principle of synthesis and integration) 담고 있다. 비록 德은 道를 특수한 초점(particular focus)으로 정의(define)하기 위해 쓰여지지만, 초점은 탄력적(elastic)이며 전체를 포괄할 있는 만큼(embracing its whole) 확장되는 것이다. 『道德經』에서는 「常德(constant de), 「恒德(perpetual de),「玄德(dark de),「上德(superlative de)」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德과 道는 구분할 없는(indiscernible), 일치하는 것이다. , 德이 쌓이면 德과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德을 가진 사람은 갓태어난 아기(newly born baby: 赤子 :chì zì) 같다. 그러나 儒敎에서는 인간(humanity: : rén)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論語』에 따르면 「道를 확장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이지, 道가 인간을 확장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도교적 전통은 관심을 인간 세상(human world)에만 국한시키는 儒敎에 비판적이다. 道家는 인간의 확장(extension)”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하고 강제가 없는 (acting authentically and without coercion: 無爲: 无为 :wú-wéi)」으로, 無爲를 통해 자신을 萬物으로 확장(extending oneself to all things)시키고자 것이었다. 따라서 道家의 이상적인 인간인 眞人(真人: zhēn rén) 인간세상(human environment)뿐만 아니라 자연(the natural)까지도 모두 떠안는다.


.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범주적 용어(categorical terms) 특성을 지니고 있다. 권력에의 의지란 우리가 이르게 궁극적인 사실(ultimate factum) 말한다. 니체의 우주론에 대한 미학적인 이해는 결국, 우주는 질서있는 세계(an ordered world)이며 고상한 세계(an elegant world)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 생략.


. 니체에게 존재(existence) 고르면서도 제한이 없는 역동적인 연속(seamless and unbounded dynamic continuum)이었다. 그는 존재를 힘의 영역(force-field)으로 인식하였고, 그의 부분과 전체(part-whole)” 대한 묘사는 제한된 전체(bounded whole) 개념이 필요없는 道와 德의 영역과 초점(field and focus)” 떠올리게 한다. 힘으로서의 의지(will as force: 권력에의 의지) 차이(difference) 에너지의 차별화(differentiation of energies) 産物이다. 의지를 의지하는(“wills” the “will”)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주체와 객체 그리고 (inner) (outer) 분리하는 이분법(dichotomies)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초점은 모든 영역에서의 의지 자체(within itself the full field of its conditions) 있다. 또한 그에게 권력에의 의지는 자신의 언어(one’s own terms) 세상을 창조(create)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순수한 철학자는 명령자이자 입법가(commanders and legislators)이다. 그들의 (knowing)”이란 창조(creating)이며, 창조는 법이며, 진리에 대한 의지가 권력에의 의지」라 하였다.


Ⅹ. 니체는 통합(integration)’이라기 보다는경쟁(contest)’잠식(encroachment)’ 단절적(disjunctive) 언어로 특성들(particulars)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권력에의 의지 또한 서로간의 적대적인 관계(antagonistic relationship) 나타내고 있다. , 그의 권력에의 의지는 자기극복의 불연속성(the discontinuity of self-overcoming) 내세우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ⅩⅠ. 니체와 중국의 전통사상은 자아극복에 대한 공통된 기반을 갖고 있다. ,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영향력의 확장(extending one’s influence) 위해서는자아 해체되어야 한다(ego-self must be dissolved) 점이다. 니체의 超人은 경쟁의 분노(the fury of contest) 속에서 즐김의 공유(a shared “enjoyment”)라기 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희열(personal “joy”) 맛보는 것이라 있다.

@ 최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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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