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総合)-

니체와 동양사상 (5)

雄河 2015. 12. 23. 11:15
Graham Parkes(ed.) Nietzsche And Asian Thought

Nietzsche’s Early Encounters with Asian Thought

-Johann Figl, translated by Graham Parkes-


. 니체와 동양사상의 만남은 미출간된 자료와 동양사상을 배울 있었던 지적환경(intellectual atmosphere)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아시아의 전통에 정통하게 되는데는 젊었을 , 학창시절에 글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는 이미 고등학생 , 힌두교의 운명(fate) 언급하였고, 이는 業과 윤회(karma and rebirth) 구체화시키고 있음을 있는 것이다. 니체가 커리큘럼에도 없었던 동양사상에 어떻게 접근할 있었을까? 그에게는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는 절친한 친구 도이센(Paul Deussen) 있었고, 포르타(Pforta)에서는 인도철학에 정통했던 스승인 August Steinhart Karl August Koberstein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니체는 동양사상을 긍정적(positive)으로 평가하게 되었고, 플라톤을 이해하려면 인도ㆍ동양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임을 교육받게 되었다. 이처럼 니체에게는 철학적 박식함을 갖춘 스승들이 있었으며, 동양사상을 공부하기엔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다.


. 괴테-쉴러 기록보관실(Goethe-Schiller Archive)에서 발견된 니체의 노트와 자료들은 그의 동양사상과의 만남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샤르슈미터(Carl Schaarschmidt) 강의에서 동양사상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기록에는 동양사상을 3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인도-게르만이 동양사상을 전해주는 다리(bridge)였다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브라만교를 원래 순수하고 고귀한 종교가 구체화된 (an ossification of an originally pure and noble nature-religion)으로 보았다. 또한 불교를 범신론적인 니힐리즘(pantheistic nihilism)으로 보았고, 열반은 절멸의 목표(the goal annihilation) 하였다.


Nietzsche and the Suffering of the Indian Ascetic

-Michel Hulin,translated by Graham Parkes-


니체가 비록 세부적인 구분없이 인도를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도의 불교와 브라만교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1)니체가 불교에 보다 친숙했었다는 , 2)불교를 철학이 아닌 종교로 보았다는 , 3)브라만교가 금욕주의적인 반면, 불교는 反금욕주의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때문이다. 니체는 Daybreak에서 야만인(barbarian)→순교자(martyr)→금욕주의자(the ascetic)라는 순환적이고 변증법적인 경로(the circular and dialectical path) 이야기한다. 야만인이 희생자에게 고문을 강요하지만, 희생자는 외부로부터 힘을 얻으며 우월성(superiority) 느낄 있다.

니체에게 브라만교의 금욕주의는 무엇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한(elimination of suffering) 열망이었다. 또한 니체는 해방(liberation)마지막으로 얻는 완전한 최면이나 휴식(total hypnotization and repose at last achieved)”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또한 고행(tapas) 개념이 가진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에너지의 축적(accumulation of energy)으로서의 금욕주의는 神의 의지라 있는 운명으로부터 탈출할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自我의 현상(the phenomenon of ego) 대한 베단타의 비판은 잘못된 外樣인(I)”로인해 감추어진 자신의 실재(the reality of the Self-ātama)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니체는 금욕주의는 남을 위한 자기희생(sacrifice himself) 아니라, 감정적 혹은 리비도적인 만족감(affective or libidinal satisfaction) 얻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의 주된 관심은 기독교적 금욕의 신성함을 제거하는데(demystify) 있었다. 그는 불교가 이면에는 근본적인 도덕적 발전이 없는 니힐리즘을 개략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도덕의 가치(moral values that have not been surpassed) 이러한 비관론 속에서 발견된다.


Nietzsche’s Trans-European Eye

-Mervyn Sprung-


니체는 그의 일생 절친한 친구였던 도이센(Paul Deussen)에게 인도철학만이 유럽철학과 유사하다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는 그의 유럽을 초월하는 시각(trans-European Eye) 보여주는 것이라 있다. 점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저작과 편지 등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그는 Untimely Meditation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실에 따라서 어리석게도 태어나고, 벙어리로 태어나기도 한다.” 우파니샤드 文句를 쓰고 있으며, The Gay Science에서는 옴마니 반메홈이라는 주문을 쓰기도 했다. 또한 on the Genealogy of Morals에서 선과 , 모두가 족쇄이며, 완벽한 것은 양자 모두를 지배하는 이라는 불교적인 언급도 하고 있다. 그리고 法句經(Dhammapada) 적의(enmity)로는 적의가 끝나지 않지만, 友誼(friendliness)로는 적의가 끝난다 구절도 Ecce Homo에서 인용한다. 니체는 생리학자(physiologist)로서의 부처를 찬양하는데 이유는 그의 가르침이 보다 위생적(hygiene)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반(nirvana) 존재로부터의 허무주의적 회피(nihilistic turning away)”라는 비판을 하기도 하였으며, 베단타의 금욕주의가 허무에 대한 최면적인 느낌(hypnotic feeling of nothingness)” 담고 있는 향락주의와 비슷한 점을 비판하였다.

쇼펜하우워의 인도철학에 대한 引導와 도이센의 관심과 영향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시각은 유럽에 대한 초월이라기 보다는 보다 유럽적(more European)”이었다. 도이센의 Das System des Vedanta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나 질문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Meysenbug 『샤쿤탈라』라는 대표적인 인도문학을 소개하였지만 유럽의 각색 형식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니체는 이를 거부하였다.


Deconstruction and Breakthrough in Nietzsche and Nāgārjuna

-Glen T. Martin-


. 니체는 末年에 존재(existence) 대한 허무주의적 평가절하(nihilistic devaluation) 극복하는 방법과 새로운 긍정의 형태(a new mode of affirmation) 나아가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니체의 초기 저작에서 나타난 진리와 文化(truth and culture)’ 사이의 갈등은 차후 진리와 (truth and life)’ 사이의 허무주의적 갈등(nihilistic conflict)으로 변했다. 만약실재 자체(reality-in-itself)” 관념이 해체(deconstruction) 통해 완전히 인식된다면, 니힐리즘이 한계에 이르게 된다면, 우리는 神의 죽음과 니힐리즘을 넘어 존재의 변형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a transformation of our being-in-the-world) 직면하게 된다.


. 어떤 것을 단순히교환(exchange)’하는 것이 아니라변형(transfigure)’ 있는 연금술사(alchemist)야말로 인류의 유일한 恩人(benefactor)이다. 디오니소스적이고 예술적인 진리(Dionysian and artistic truth) 인간관계를 삶으로 변형하는 가능성(the possibility of a transfigured human relation to life)으로 하여금 믿을 수도 없고 가치도 없는 형이상학적 진리(metaphysical truth) 대신하게 만든다. 베단타(Vedanta)에서는 영원히 생성과 소멸을 계속하는 세상을 브라만의 희극(the play of Brahman) 리라(līlā) 표현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재(reality)” 대한 단순한 이해(single apprehension)로부터 벗어난 예술가-어린이의 희극(the play of artist-child) 변형될 수도 있고 변형할 수도 있다.


. 대승불교도이면서 中觀派(Mādhyamika) 철학의 시조인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인간이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열반(nirvana) 평화와 자유를 누릴 있도록 하기 위한 저작들을 남겼다. 언어는 사람의 사상세계(thought constructions)에서 실재(reality)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유혹을 일으키는 주요범주(central categories)이며, 이에 대해 그는 부정(negations) 변증법적인 해체(dialectical deconstruction) 시도하였다. 어떤 것은 이러-이러하다(is)”라는 관념에 결부된 존재자체(existence itself)” 대한 형이상학적 전제(assumption) 무지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어떤 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한 두가지의 실체(entities) 관계에서 서로 일치하지도 다르지도 않다. (emptiness) 이해하는 者는 슬픔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며, “가식적인 현상(constructed phenomena)”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게 된다.


. 나가르주나 철학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空의 개념이다. Murti 따르면, 나가르주나의 개념은 지적 영감(intellectual intuition)’ 결과였으며, 그의 비판철학(critical philosophy) 아비달마학파(Abhidharma school: 阿毘達磨) 無我主義(anātman doctrine)’ 대응하면서 발전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저작은 존재(being)” 계속 부정하였고, 열반과 윤회(samsara)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주장하였다. 그는 自性지향(svabhāva orientation) 거부하고, 감각적인 인식(sensory perception) 초월하면서도, 주체와 객체의 이중성을 포괄하는(including the duality of subject and object) 논리를 전개하였다. 따라서 그는 만물은 생성도 소멸도 하지 않는다(neither originate nor disappear) 결론짓는다. 그에게 空은 개념화할 있는(conceptualizable)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었다.


.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니체의 무신론으로의 이동(the shift to atheism) 인간의 존재양식(human mode of existence)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세계의 가시적인 형태(the visible form of the world) 바뀌는 것을 나타내는 근본적인 전환(fundamental conversion)” 의미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니체의 해석학적(hermeneutics) 혹은 나가르주나의 변증법적(dialectic) 해체과정(deconstructive process) 통해 우리는 영역으로의 돌파구를 찾을 있을 것이다.


<참고>

샤쿤탈라: 아름다운 시문과 구상으로 인도문학의 최고 걸작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어느날 사냥을 나간 브르족의 왕 도프샨타는 산중에서 천녀(天女)인 메나카의 딸 샤쿤탈라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합한다. 왕은 성으로 돌아가며 기념으로 반지를 주고 떠난다. 그런데 이 때 사랑에 들떠 있던 샤쿤탈라는 그녀를 찾아온 선인(仙人) 두루바사스를 허술히 대접한 탓으로 그의 저주를 받는다. 그 후 임신한 샤쿤탈라는 시녀를 데리고 성으로 왕을 찾아간다. 그렇지만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도중에서 반지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대면했을 때도 왕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결국 그녀는 슬픔만을 안고 왕궁을 떠나 천계(天界)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반지가 물고기 뱃속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를 발견한 어부가 왕에게 전해 준다. 이 반지를 본 왕은 샤쿤탈라가 다시 생각나서 그녀와 재결합하여 행복하게 산다.


용수(龍樹, Nagarjuna, 150?~250?) : 인도의 불교학자. 원이름 나가르주나(나가:용, 아가르주나:나무 이름). 남인도 출생. 북인도로 가서 당시 인도의 사상(思想)을 공부하고, 불교 특히 신흥 대승불교(大乘佛敎)사상을 연구, 그 기초를 확립하였다. 때문에 제21의 서가(書家), 8종(八宗)의 조사(祖師)라고 일컫는다. 《중론(中論)》에서 전개한 공(空)의 사상은 그 이후의 모든 불교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즉, 실체(實體:自性)를 세우고, 실체적인 원리를 상정(想定)하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를, 철두철미한 비판을 가하면서, 일체의 것이 다른 것[他]과의 의존·상대·상관·상의(相依)의 관계[緣起] 위에서만 비로소 성립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상관관계는 긍정적·부정적·모순적 상태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느 것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공의 상태에 이를 수 없는 반면, 구극(究極)의 절대적 입장[眞諦·第一義諦]은 우리의 일상적 진리[俗諦 즉, 世俗諦]로만 성립할 수 있으며, 이를 초월해서는 논의의 대상이나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의 학파를 가리켜 중관파(中觀派)라고 불렀다. 주요 저서에 《중론》(4권) 외에 《회쟁론(廻諍論)》 《광파론(廣破論)》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공칠십론(空七十論)》 등이 있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100권)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은 그의 저작설에 의문점이 있다.


@ 최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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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