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선택 기로에서 中立이나 외교적 僞裝은 현실성 없고 보복 부를 것
국익 고려하면 美가 정답… 北 공격 대비 사드 필요, 분명한 입장 中에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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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고문
우리의 1000년 대외(對外) 역사는 강대국의 어느 편에 서느냐에 대한 갈등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때 중국의 원(元)과 명(明)으로 갈리더니 조선에 와서는 명과 후금(후에 청)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비참한 호란(胡亂)을 겪었다. 한말(韓末)에 우리는 일본·중국·러시아의 어느 편에 서느냐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나라를 잃었다. 광복 후는 미·소의 편 가르기로 나라가 두 쪽이 났다.
약소국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어느 편에 설 것이냐로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G2의 자리에 올라선 중국은 막대한 교역량을 미끼로 한국에 '탈(脫)미국'을 압박하고 있고, 미국은 한국을 아시아의 대중(對中) 교두보로 삼기 위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전선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그리고 중국 주도의 투자은행(AIIB)과 미국 주도의 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한국 가입 압력으로 구체화되고 있지만 본질은 우리가 미·중의 세력 다툼에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세력이 팽창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대립은 필연적인 것으로 예견됐다. 중국은 자신의 코앞에 미국의 전진기지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고, 미국은 중국의 무소불위적 팽창을 대륙 내에 묶어둘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협곡'에 한국 또는 한반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다. 세 갈래 길이 있다. 첫째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중립(中立)이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영세중립국은 스위스·오스트리아·라오스의 3국이다. 이들은 타국의 개입을 받지 않는 대신 국제관계에 개입할 수 없는 제한이 있어 세계의 문제에서 제외되는 불리점이 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도 영세중립을 인정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둘째는 어느 편도 아닌 것 같고 동시에 어느 편에 선 것도 같은 아리송한 외교적 위장술을 쓰는 길이다. 약은 것 같지만 스스로도 우왕좌왕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에 함몰돼 결국 어느 쪽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다른 쪽으로부터 보복과 멸시를 당할 수도 있다.
셋째의 길은 자국의 안보와 경제라는 대국적이고 국익적인 요청에 따라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사안에 따라 융통성을 두는 지혜와 용기와 설득력이 수반돼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은 동맹국인 미국이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서북쪽으로 중국, 동남쪽으로는 일본에 갇힌 폐쇄의 연속이었고 빈곤과 종속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광복과 더불어 미국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중·일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살 만한 나라'로 성장했다. 우리는 다시금 중·일에 갇힐 수 없다.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용하든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미국을 활용하면 된다.
한국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웠고 이를 자랑스럽게 실천하고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사상가인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만든 세계'란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전 세계에서 민주국가로 불릴 수 있는 나라는 불과 10여 개국이었고 전 세계의 연평균 GDP 증가율은 1% 정도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민주국가는 100여 개국으로 늘었고 세계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다. 그 중심에 미국이 있다.' 한국은 민주화된 나라 명단의 맨 위에 있다.
2000년대 최장기 주중 대사를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은 엊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과 일본으로서도 제일 중요한 나라가 미국이다. 중국은 우리와 역사적 관계도 오래됐고 문화적 공유점도 많지만 이념 등 다른 점이 아직 많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남북한 관계에서 어떤 경우에도 중립은 지키려 한다. 한국이 북한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중국이 미국처럼 우리를 지지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가 주미(駐美)가 아닌 주중(駐中) 대사를 지냈고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중국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견해는 대단히 의미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앞에 속수무책인 한국의 처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아무런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자국의 미사일 기지를 탐색할 수 있다는 데만 신경을 쓰고 한국의 안보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자기들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생사가 걸린 북한 미사일이 관심사이지 중국의 미사일 기지 탐색은 우리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또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막아주면 우리도 사드 배치를 거부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우유부단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편집자 注: 시진핑과의 황혼 '열애'에 빠져 오매불망 그자를 그리워 하고 있는 朴에게 그런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 일지도 모른다.)
중국으로서도 한국이 이리저리 눈치 보며 미·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생각 있는 중국인이라면 앞으로 우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우리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 처신을 대한(對韓) 외교의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삼을 것이다.
입력 : 2015.03.17 03:00 | 수정 : 2015.03.17 03:01
중국 측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우려를 표명해왔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작년 7월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직접 사드 배치가 중국 국익에 배치된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엔 중국을 찾은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이 같은 얘기를 했다. 당시 우리 국방부 관계자는 "우려를 표명하는 여러 표현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는 우리 외교관들에게 훨씬 더 노골적인 주문을 해왔으며 이 중에는 위협(威脅)이나 협박으로 받아들일 만한 내용도 있었다는 말들이 최근 들어 흘러나오고 있다. 사드를 배치할 경우 친한(親韓) 노선이 친북(親北) 노선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경제적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마저 있었다는 보도까지 잇따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드는 갈수록 향상되어가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검토되어 왔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패트리엇(PAC-3) 중심의 저(低)고도 요격 체계에 고고도 요격 전용인 사드를 결합해 2중(重) 방어망을 완성,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무력화하자는 취지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주권(主權) 사항이고 군사 동맹 관계인 한·미가 협의해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도 한·미 양국이 이 문제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온 것은 중국 측의 우려를 감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측이 '관심과 우려'라는 표현을 쓰는 이면에서 한국 정부에 유·무형 위협을 가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중은 앞으로도 계속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할 관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 없이는 우호적 분위기가 오래갈 수도, 더 깊어질 수도 없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측으로부터 어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3NO 입장'을 견지해왔다. 중국 정부가 압력을 가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이런 입장도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중국의 거친 압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로 난처한 처지를 덮으려 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번 일로 중국과 관계가 어긋나서도 안 되지만 '굴욕 외교'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도 안 된다. 정부는 한·중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고 사드 배치 자체에 대한 입장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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