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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프로페셔날--키신저와 주은래

雄河 2015. 12. 25. 15:52

게임과 프로페셔날--


벗과 라이벌로서의 키신저와 주은래


 

 


 

키신저 박사(Kissinger·89)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On China)"(2011)에서 미국은 이제 중국과의 게임과 협상으로 국제정치를 풀어 나가야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키신저는, 여태까지는 중국과의 게임 뿐이었음을 지적하면서도, 이 대목에서 중국과의 협상까지 운운함으로써, 중국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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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가 마오쩌뚱을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2월 21일,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 모이는 중난하이(中南海)의 내부에 있는 마오의 개인서재에서였다.

키신저는 그 때 마오쩌뚱(毛澤東·1893~1976)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내가 좌중에서 유일하게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마오쩌둥은 덧붙였다. "저 양반더러 오늘의 주(主) 연사가 되라고 하는 게 어떻겠소?" 」

 

이는 마오가, 키신저의 연설이 필경 모인 사람들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리라고 보고 주문한 것으로 보여진다.즉 키신저가 중난하이(中南海)에 모인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게임이 이뤄지는 것을 마오는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키신저는 이 마오의 말에 엄청난 불쾌감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좌중에는 같이 '모시고' 간 닉슨 대통령도 있었고, 중국의 천하의 국제정치 이론가이자 지략가인 주은래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키신자가 메인 연사로 한 보따리 풀으면, 대통령인 닉슨의 체면이 구겨질 수도 있었고, 중국식 국제관계론의 대가로서 정세분석가인 주은래와 일종의 토론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즉 마오의 입장에서는 키신저에게 게임을 하라는 주문이었고, 키신저는 외교 '프로페셔날'의 입장에서 응하고 싶지 않은 주문을 받은 것이다.

 

사실 '프로페셔날'은 구경꾼들을 앞에 놓고 어떤 게임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볼품 없는 자기실력을 좀 과시해 보려는 '또라이'가 아닌 이상, 진정한 프로페셔날은 아마츄어 구경꾼들 앞에서 어떤 게임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바둑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1980년대 종로 인사동 끝자락에 있는 민정당 당사에 어인 일인지 조훈현 9단과 조치훈 9단의 모습이 보였다. 민정당 아(兒)들이 무슨 꿍꿍이속으로 당대 최고의 '검투사' 2명을 초청한 것이었다. 이 때 민정당 정치인들이(바둑에 있어서는 '맹컴' 아마츄어들인 그들이), 조훈현과 조치훈에게 당장 이 자리에서 한번 붙어보라는 주문을 했다. ㅎㅎ

이 당대 최고의 2명의 '글라디에이터'가 바둑판에서 한번 붙으면 이 또한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보는 이들(민정당 兒들)에게는 최고의 오락이 됐을 것이다.

19로의 마술사로서 현란한 잽과 경쾌한 푸트웍, 승기를 잡았다 하면 융단폭격으로 상대방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는 화려한 전투력의 소유자 '조ㄱ제비' 조훈현 9단 vs 철저하게 2선을 기는 마법의 퍼즐사(師)로서 '목숨을 걸고'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바둑을 두는 파란의 승부사 조치훈 9단.

히야~ 민정당 兒들아, 너희들만 볼 꺼니? 민정당사가 뭐 한국의 콜롯세움이니?  

 

그러나 이 때 조치훈 9단이 "오~노우"를 선언하고 민정당사를 빠져 나갔다. 프로페셔날 조치훈 9단이 '코흘리개 아마츄어 관객'들을 위한 '오락'바둑을 두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정당 兒들은 닭쫓던 개 지붕 처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야들아 그러니까 명심햐, 권력이 세다한들, 진정한 프로페셔날의 자존심과 타마시이(魂: 혼,정신)까지 꺾지는 못한다는 것을...ㅎ

 

키신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키신저도 유태계 출신으로 미국에 밀항하다시피 입국하여, 고생을 무지무지 한 끝에 공부하고 또 공부하여 최고 학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윽고 정계에 스카우트되어 현실정치의 최고이론가이자 국제정치의 전략가로서 이름을 올렸다. 누가 키신저의 학자로서의 경력과 능력, 정치이론가로서의 안목에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당대최고의 프로페셔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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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1972년 2월 21일, 중난하이(中南海)의 내부에 있는 마오쩌뚱의 개인서재에서, 짖궂게도 마오는 키신저에게 '게임'을 요청한 것이었다. 주(主)연사가 되어 회담장을 한번 휘저어 보라는 뜻 아니었겠는가?  
그러면 이쪽에서는 중국 최고의 '미남 검투사' 주은래를 붙여보겠다는 마오의 의도였을까? ㅎ

(물론 마오는 이 회담장에서도 중국 외교의 기본 전술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 즉 오랑캐끼리의 갈등을 유발하고자 하는 잔머리를 굴렸을 가능성도 있다. '유일한 박사'이자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키신저가 국제관계이론과 국제체제론의 대가로서 회담장의 관심을 들쑤셔 놓으면, 키신저의 보스인 닉슨 대통령의 심사가 편치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계산한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과연 마오쩌뚱이 아닌가? ㅎ)

 

한편으로 마오는 국제문제를 놓고 벌이는 키신저와 주은래의 보다 활발한 토론을 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오는 아마츄어는 아니었지만, 국제문제와 국제정치에 있어서는 키신저와 주은래가 프로페셔날이었다.

그래서 마오는 키신저에게 게임을 주문한 것이었겠는데, 키신저가 이를 아주 기분 나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위의 민정당사 일화에서 소개된 조치훈의 심리를 읽으면 키신저의 심리도 이해가 갈 것이다. 

 



●주은래(저우언라이, 周恩來·1898~1976)에 대한 키신저의 평가

"60여 년 공직 생활에서 나는 저우언라이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그는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읽을 수 없는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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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雄河) 동감이다. 주은래는 특히 눈썹이 짙었다. 장폴벨몽도(Jean Paul Belmondo)의 눈썹이 그랬던 것처럼...게다가 프랑스 유학 등에서 다져진 지식과 국제감각. 좋은 품성. 스마트한 얼굴. 섬광이 이는 듯한 눈빛. 서방세계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호감을 준 중국인을 꼽으라면 단연 이 주은래를 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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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