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에세이·Values·

장하준 vs. 자유시장경제 -- 과연 어느 길이 옳은가?

雄河 2015. 12. 24. 13:32
장하준 씨의 글은 평소에 많이 읽어 보셨겠지요? 아랫 글은 장하준 씨를 비판하는 글 같습니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또는 둘다 어느 부분은 옳은 부분이 있고 어느 부분은 틀린 부분도 있는지, 그 여부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스웨덴 복지병 대수술 결국 장하준 참패 입증

<장하준에게 속은 23가지②>복지제도는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스웨덴도 자유시장경제로 선진국 진입…미르달 관점도 달라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2011.06.27 08: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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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장하준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책 판매량이 누적으로 100만장을 넘었다고 하니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신기록을 세운 셈이다.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하준의 글에 감동 받은 사람들의 글이 지천으로 깔렸다.

장하준의 매력은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개방과 경쟁보다는 보호와 지원이 옳고, 기업이 주주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그의 말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복지제도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라가 망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장하준은 복지제도가 오히려 성장률을 높인다고 말해준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콕콕 찍어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니 누가 좋아하지 않겠나. 금상첨화로 그 경제학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데다가, 미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도 받았다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간다. 그가 쓴 글의 또 다른 매력은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꺼내어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이다. 경제 이야기는 늘 골치가 아팠는데, 옛날 이야기로 경제를 설명해주니 그 또한 글의 맛을 더해 준다.

그러나 장하준의 역사 해석과 정책 처방에는 틀린 것들이 많다. 보호무역 때문에 선진국들이 성공했다든가, 시장경제로 성공한 나라가 없다든가, 큰 정부를 하면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등 중요한 주장들이 모두 틀렸다. 그렇더라도 보통 학자의 것이라면 단순한 견해차이라고 무시해도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진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의 것인 만큼 누군가는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역할을 하고 나서기까지 망설임도 컸다. 내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인 듯 나서는 것이 잘하는 일일지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 나 보다 훨씬 더 실력 있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학술논문 쓰기에도 바쁜 경제학자들의 형편을 생각할 때, 결국 이런 글은 나처럼 대중설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몫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하준이 그래 왔듯이 나도 최대한 많은 사례와 이야기들로 글을 꾸려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리하여 비록 대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10만부라도 팔리는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

이 시리즈는 월 수 금 주3회로 7주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현재 확정된 주제로는 “보호받지 않는 산업이 오히려 더 발전했다,” “복지제도는 성장률을 낮춘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가로챘다,” “결국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박정희 시대는 상대적 자유경제의 시대였다,”의 다섯 개다. 나머지도 곧 확정해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비판과 성원을 기대한다.<필자 주>


사람들은 대부분 애써서 돈을 벌기보다 공짜로 사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이 복지제도를 부르짖는 이유도 일하기보다 편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한번쯤은 공짜의 삶과 복지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그로인해 다가올 불행한 미래 때문이다.

베짱이처럼 살다보면 겨울이 더욱 추워진다는 것을 어릴적부터 우리는 배워왔다. 그런데 장하준은 복지제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교묘하게 뒤엎는다. 복지제도를 해도 여전히 나라는 잘 살 수 있으며 오히려 경제성장율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장하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잘 설계된 복지 정책이 있는 나라 국민들은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오히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보호 무역에 대한 요구가 덜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 해도 실업 수당을 받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에 반해 미국 사람들은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생활이 심하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복지 정책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들이 이른바 ‘미국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1990년 이후에도 미국과 비슷한 성장을 하거나 심지어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장하준 23가지, p290)

장하준의 이 글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보호무역에 대한 요구가 덜하다. 둘째, 그 이유는 복지제도가 안전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셋째, 스웨덴 등 복지정책이 잘 갖춰진 나라가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각각의 부분들이 얼마나 사실인지에 대해서 꼼꼼히 따져보자.

재정 규모가 큰 나라가 더 개방적이라고? 아전인수식 해석

먼저 사실부터 확인해 보자. 과연 미국보다 유럽의 나라들이 더 자유무역에 대해서 개방적인가? 또 유럽의 나라들이 미국보다 더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주1)를 가지고 장하준의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 확인해보자.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국가별로 10개의 하위지표를 가중평균해서 산출되는데 그 하위 지표들 중에서 장하준의 말과 직접 관련을 가지는 것은 재정지출 지표(Government Spending)와 무역자유 지표(Trade Freedom)이다.

이 지표들은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재정지출 지표의 경우 재정지출 규모가 작을수록 지표값은 커진다. 무역 자유 지표는 무역 개방의 정도가 클수록 높게 매겨진다. 다음의 표는 미국과 북유럽 세나라의 재정지출 지표와 무역자유지표이다.


미국의 재정 지출 지표는 54.6으로서 각각 스웨덴의 17.3, 핀란드의 26.5보다 높다. 노르웨이는 51.5로서 미국보다 약간 낮다. 장하준 교수의 말대로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재정지출 규모가 미국에 비해서 현저히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역의 자유도는 장하준 교수의 말과 다르다. 이 네 나라의 무역자유도는 미국 86.4, 스웨덴 87.6 핀란드 87.6, 노르웨이 89.4로서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재정지출 지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역자유도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안전망 때문에 유럽국가들이 개방적이 되었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근거가 없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떨까?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이 재정규모와 무역자유도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상관계수를 이용하기로 한다. 상관계수란 두 개의 변수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 지를 보여주는 숫자로서 두 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의 값을 갖고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의 값을 갖는다. 완전히 똑같이 움직이면 상관계수는 +1이고 정반대로 움직이면 상관계수가 -1이 된다.

재정규모가 클수록 무역자유도가 높아진다는 장하준의 말이 맞다면 이들 두 지표간의 상관계수는 -1에 가까워야 한다. 반대로 상관계수가 1에 가깝다면 둘은 역의 관계가 된다. 만약 둘 간에 어떤 관계도 없다면 상관계수는 0이 될 것이다.

OECD 33개국을 대상으로 계산한 상관계수는 -0.31이며 약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나라들끼리의 비교를 위해 지역을 달리해서 분석할 경우 이 두 지표간에는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유럽 나라들은 -0.09, 중아시아태평양지역은 0.064, 중동/북아프리카는 -0.42, 북미는 -0.98, 중남미는 0.32 등이다. 장하준 교수의 말에 부합하는 경우는 북미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이다.

북미의 경우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세 나라뿐인데 그 중에서 멕시코가 재정규모는 작은 반면 개방도는 유난히 높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반면 유럽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두 지표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중남미의 경우는 이 재정지출이 작은 나라가 오히려 무역이 더욱 자유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규모가 클수록 자유무역에 덜 저항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다.

스웨덴도 자유시장경제로 부자나라가 됐다

한국과 더불어 스웨덴은 장하준 교수가 자신의 논점을 입증하기 위해 자주 등장시키는 사례이다. 파업으로 지새우던 나라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높은 복지에도 불구하고 아니 높은 복지 때문에 미국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하지만 실제의 스웨덴의 역사는 장하준의 논점을 부인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100년간 스웨덴의 성장은 자유주의 경제 때문에 가능했다.(주2) 본격적인 복지제도는 1970년대 이후 20년 정도 지속되는 데 그 시간 동안은 스웨덴은 저성장으로 몸살을 앓는다. 다시 성장의 계기를 찾은 것은 90년대 초반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을 택하면서부터이다. 스웨덴의 경제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스웨덴은 1864년부터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택한다. 그뒤 60년 동안 스웨덴은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를 구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복지제도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다음의 표는 1870년부터 20세기 말까지의 각 나라별 재정의 비중을 보여준다. 1870년 경제성장을 시작할 당시 스웨덴의 경제규모에 대한 재정 비중은 5.7%로서 세계 어떤 나라보다 작은 상태였다. 7.3%의 미국보다 더 낮았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스웨덴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시작한다.


스웨덴에 복지제도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2년부터였다. 마치 한국이 지난 60년간 그랬듯이 이 나라도 7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다.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되고 1932년 드디어 사회민주당이 집권한다. 그것이 복지제도의 시발점이 된다. 하지만 사회민주당도 그 후 40년간은 그리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지 않는다. 임금정책만 보더라도 오히려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폈던 것이 사실이다. 1970년까지도 스웨덴은 고속성장을 지속한다.

성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철저한 복지제도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GDP에 대한 재정지출의 비중은 급격히 늘기 시작해다. 1980년 정부재정의 비율은 국민총생산의 60%에 달함으로써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상태가 된다. 세금이 급속히 늘어나 일부 부자들에게는 한계세율이 100%를 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기업에 대해서도 개입정책이 강화되어 기업을 보호하고 보조금을 주는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수입에 대한 제한조치들이 등장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강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 20년간 스웨덴은 장하준이 권할만한 정책은 모두 한 셈이다. 하지만 결과는 장하준의 참패다. 그가 조롱해 마지 않는 주류경제학의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다. 근로의욕은 감퇴하고 투자는 사라졌으며 실업은 늘었다. 소득은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뒤걸음질을 쳤다. 급기야 1992년 외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다.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스웨덴 정부는 1980년대 말부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장하준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혐오할만한 모든 것들로 대응한다. 복지 혜택 및 재정 축소, 감세, 공적연금의 부분 민영화, 바우처 제도에 의한 공립학교 선택제 등 파격적인 자유주의 개혁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대대적인 민영화에도 착수했다. 스웨덴은 경제위기의 과정에서도 시장의 자유도를 늘린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복지제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안심하고 모험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논점이다. 그 말이 맞다면 복지제도가 철저히 자리잡는 1970년대 이후부터 새로운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투자도 왕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스웨덴의 50대 기업 중에서 오직 한 개만이 197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주3) 나머지 49개는 자유방임 경제 시절에 등장했던 기업들이다.

자유경제로의 전환은 복지와는 무관한 과정인 것 같다. 한국의 60년대, 중국의 80년대, 인도의 90년대 대전환이 모두 그렇다. 자유경제의 기간이 수십년 지속되면 부가 축적되는데, 그리고 나면 그 돈을 쓰고 싶은 대중적 욕구가 분출된 결과가 복지국가라는 것 아닐까.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하게 만든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유럽 노동자들에 대한 OECD의 인터뷰 결과, 노동시장 보호가 강한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의 노동자가 유연한 노동시장의 미국 캐나다 덴마크의 노동자보다 더 실직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주4) 복지제도는 사람들을 안주하게 만들고 더욱 변화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20년의 철저한 복지혜택 후 90년대 초에 결국 스웨덴마저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장하준이 즐겨 내놓는 90년대 이후 스웨덴의 고속성장은 외환위기 이후에 이어진 자유주의정책들 때문이다. 민영화, 복지 혜택 및 재정 축소, 감세, 공적연금의 부분 민영화, 바우처 제도에 의한 공립학교 선택제 등 파격적인 자유주의 개혁이 그것이다.

 ◇스웨덴 복지모델을 상징하는 그림 ⓒ인터넷 화면 캡처


스웨덴의 미르달과도 다른 장하준의 복지제도론

장하준은 미르달 상을 받은 학자다. 미르달은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경제학자이며 스웨덴 복지제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복지제도에 대해서 미르달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할 수 없다면 세계 어떤 나라도 복지제도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복지제도의 가장 큰 위험은 사람들이 일할 의지를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먹여 살려주는 데다가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그 중 큰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을 하나 안하나 차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일할 의지를 버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르달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가장 작은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라고 확신했다. 첫째 스웨덴 사람들의 청교도적 근로윤리가 누구보다 확고하기 때문이고, 둘째 스웨덴 사회가 상당히 동질적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스웨덴은 원래부터 부지런한 가족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복지를 하든 세금을 높이든 관계없이 여전히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그토록 노동윤리가 철저했던 스웨덴 사람들조차도 복지제도 앞에서는 게을러져 갔다. 1970년대 이후의 성장률 둔화와 1990년대 초의 외환위기가 바로 그 증거다. 1990년대 이후의 고성장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본격적 자유경제적 개혁의 산물이다. 장하준은 그런 사실조차도 본인의 의도에 맞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버렸다.

불안전한 고용이 의대 법대 준비생을 늘렸다고?

장하준의 아전인수식의 사실 해석은 한국 학생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한국 학생들 중 의대 지원자가 많은 이유를 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의 노동시장 유연화 때문인 것으로 몰아간다.

200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2퍼센트에 드는 이공계열 대학 입시생 다섯명 중 네명이 의대를 가고 싶어한다. (중략) 한국에서 의대가 늘 인기를 누리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초특급 인기는 (중략) 21세기에 들어 나타난 현상이다. (중략) 이런 기현상의 원인은 지난 10년 사이에 직업 안정성이 극적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략) 1997년 금융 위기 전까지만 해도 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종신 고용을 보장받고 일했다. (중략) 그러나 이제는 (중략) 정규직 직원이라도 40~50대의 나이든 노동자들은 젊은 세대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분위기를 견뎌내야 한다. (중략)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우선 성적 상위권 학생 중 의사 지망생 많은 현상이 과연 외환위기 이후에 특별히 나타난 현상인지부터가 의문이다. 필자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1975년이다. 고등학교는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다녔으니 장하준의 말대로라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다.

40년이나 된 과거사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사실이 있다. 문과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대 사회계열(당시에는 법학과를 따로 뽑지 않았다), 이과 다니는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의대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 순으로 의대를 갔다.

대학을 가서도 문과생들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CPA 공부, 관세사 같은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도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특별대우했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학생조차도 행정고시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다.

의대 법대와 관련하여 21세기적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하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이다. 외환위기와 더불어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 2005년부터 학생을 모집했다. 당연히 대학에서도 이과계열 공부를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2007년에 법이 통과되었으니 그 때부터 학생들은 로스쿨을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대 입학 준비와 변호사 판검사가 되기 위한 노력에 특별히 21세기적인 것이 있다면 이런 새로운 제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게다가 고용의 불안정성은 기업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의사 역시 숫자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부도에 몰리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의사면허만 따면 일생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도 앞길이 막막한 변호사들이 많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진정한 복지제도는 최빈층의 구제여야 한다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혁신적으로 만들고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틀렸거나 거짓이다. 복지제도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성장률을 낮춘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당연한 법칙마저 장하준 교수는 부인하려고 한다.

필자도 물론 복지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풍요를 누리는데 한쪽에서 굶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짜로 사는 식의 복지는 곤란하다. 그것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의 철학은 자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소년소녀 가장이나 무의탁 독거노인들, 장애우들, 이런 사람들 대상의 복지제도는 더우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득의 가장 밑바닥을 끌어올려서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정책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지수혜자들의 근로의욕 감퇴가 따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자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로 한정을 짓자는 것이다.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틀렸거나 또는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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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자유지수 홈페이지는 http://www.heritage.org/Index/ 참조할 것
2 Economics 101: Learning From Sweden's Free Market Renaissance, http://www.youtube.com/watch?v=ENDE8ve35f0
3 Johan Norberg, Swedish Models; http://www.johannorberg.net/?page=articles&articleid=151
4 Johan Norberg, Swedish Models; http://www.johannorberg.net/?page=articles&articleid=151

글/김정호 자유기업원장   http://www.dailian.co.kr/  ⓒ (주)이비뉴스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
 

2011/06/27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