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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로망"--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과 사랑

雄河 2015. 12. 24. 02:34
"여자의 로망"--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과 사랑
 
혁명과 반역의 이름,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
 

2011/05/14 17:17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있다. 방치된 히로인, 순교자, 전작이 영어로 다 번역되지 못한 비극적인 필자, 페미니스트 챔피언으로 결코 오르지 못할 여자, 왜냐하면 그녀는 마르크스주의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한 관심은 오래 전에 죽은 그녀가 살아 돌아올 만큼 대단한 열기도 아니고 축구팬들처럼 열광적이지도 않지만 주목할 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관심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은 최근에 나온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들The Letters of Rosa Luxemburg》이다. 외신들이 전하는 그녀의 서간집 서평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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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 서간집



자유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



독특한 형태의 ‘자유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란 언제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의미한다(Freedom is always the freedom of the one who thinks differently)”고 말하며 사상의 자유를 으뜸으로 쳤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들려줄 말이 많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따내고 여성을 사랑했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사상은 언제나 페미니즘에 친절한 토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우선순위는 계급문제였다.



그녀의 혁명 프로젝트는 20세기 초 20여 년 동안 유럽 정치의 ‘위대한 혼란’의 한 부분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위치는 그녀의 전작이 모두 번역 출판돼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그 첫 번째 텍스트가 최근에 나온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들》이다. 총 14권으로 기획된 이 번역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이 책은 독일어, 이디시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등 4개 국어로 쓰인 편지들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독자를 타임머신으로 안내하는 이 책은 혁명과 마르크스주의에 사로잡혔던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30년 가까운 시대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아주 쉬운 텍스트다. 이 책은 또한 두렵고 격정적인 시대에 혁명지도자로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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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순간의 존재와 소리가 살아 있는 편지



이 편지들의 놀라운 점은 공기 안에 있는 그녀의 기쁨이나 도시와 정원의 소리 같은 것이 아니고 새들 안에 숨어있는 ‘조용하고 수심에 잠긴 날씨’ 라거나 친구 같은 쥐에게서 나는 ‘비의 향기’ 같은 것들이다.

그녀의 편지에는 그녀가 상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순간의 존재와 소리 같은 것들이 살아 있다. 그녀는 소소한 일상 공간의 시인이다. 내면과 외면을 나누는 경계선상에 있는 일상생활의 세세한 것들. 전혀 반복적이지 않으며 매번 아름답게 쓰인 시 같은 편지들.



당시 편지를 나눴던 그녀와 편지 대상자들은 오늘은 취리히, 어제는 베를린, 그리고 제네바, 바르샤바 같이 유럽의 위대한 도시들을 오가며 서로 편지로 소통하며 살았다. 그녀는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창립자 중 하나였으며 동지 칼 리브크네히트와 독일 공산당을 창당했다. 그녀는 수많은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반유대주의의 학대도 견뎌야 했다.



그 편지들은 모두 위대한 격변 속에서 작은 공간(때때로 감방 속이기도 했다)의 기분을 담고 있다. 당시 초기의 조직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이해와 전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매일의 삶은 매우 위험하고 종종 아주 지치는 일이었다. 끝없는 열차의 출발과 도착,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일,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 다음 날 또 가보기, 새로운 도시에서 방한 칸 얻어들기, 경찰 피하기, 일상화된 체포….



혁명은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화산처럼 폭발하던 상황을 상상해 보라. 총파업에 대한 반응, 사회민주정부들이 소집한 악명 높은 우파 의용군들은 수백 명의 급진혁명가들을 체포하고 살해했다. 그들은 1919년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녀의 동지 리브크네히트를 구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또한 몇 달 뒤 그녀의 연인이자 동지인 레오 요기헤스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시신은 한 달 후 운하에 내버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9년 한 법의학자가 베를린의 자선병원에 보존된 여성 시신을 발견했다. 그 법의학자는 로자 룩셈부르크로 여겨져 매장된 시신보다 그 시신은 엉덩이뼈가 어긋나고 한 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았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신체적 특성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범했다. 그녀는 여성이었고 많은 남성을 사랑했지만 누구의 하인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작았지만 영리하고 교양이 있었으며 자신의 학식으로 혁명에 봉사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레닌이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혁명조직에 저항했다. 그녀는 혁명이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더 오래 살아 이탈리아와 연결될 기회를 가졌다면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프리즌 노트북》에서 설파된 이론대로 군사적 무기로서 정당의 형태에 그토록 신경을 쓰기보다 유기적이고 다양한 과정으로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정치로서의 정당에 더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47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이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그녀와 같은 반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평등을 꿈꾸는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축적한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편지는 실제 쓰인 시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울림을 갖고 있다.



그녀는 특히 관료적인 개념에 적대적이었는데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사회민주주의라고 읽히는 ‘수정주의자’들의 실패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계급만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확고한 믿음을 가졌었다.



1891년부터 그녀가 죽은 1919년 1월까지 이 편지모음에서 그녀는 인간본성에 대한 비전을 결코 잊지 않는다. 감옥엘 가거나 동지들과의 갈등이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적인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종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다. 룩셈부르크가 그녀의 연인이자 동지인 레오 요기헤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끈질기고 창의적이며 일관되게 진실을 밝히는 그녀의 편지가 발산하는 특별한 에너지는 그렇지 않다면 읽기 힘든 이 서간집을 읽기 쉽게 만든다. 이 서간집은 그녀가 죽기 하루 전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에게 쓴 독일 공산당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편지로 끝난다.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이 서간집에서 다루고 있는 28년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간다.   


                                                                                                              
 

[출처] 유숙열

 

2011/05/17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