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stalgia·追憶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雄河 2015. 12. 23. 18:35

[스크랩] 청마의 흰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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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블로그 / 블로거: 빈섬

2010.7.1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위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 유치환, 1936.1.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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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중학교 때 쯤인가. 이 시를 처음 만난 뒤로, 이 시와 나 사이에는 너무 오래된 연인들이 지니는 권태와도 같은 것들이 끼어버렸다. 시의 맨살을 만지려 해도, 내 생각의 굳은 살이 그것을 방해한다. 익숙해져서 오히려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멈춰버린 비극. 어찌 청마의 이 시만 그러랴. 처음의 설렘과 전율을 굳이 복원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십대 때 읽었던 그 감동 이외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을 수 있는 맛까지도 모두 다 알아버린 것인양 지나쳐온 것이 아닌가 하는 뒤늦은 각성 때문이다.

청마는 유난히 깃발에 관한 시를 많이 쓴 사람이다. 기(旗)는 그에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유의 질료였다. 저 시를 발표한 뒤, 대체 깃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시인에 묻는 지인이 많았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 질문을 만들어 늘 던지고 있었을까. 해방 뒤 어느 날 그는 이런 시를 쓴다.


여기 망망한 동해에 다다른
후미진 한 적은 갯마을

지나 새나 푸른 파도의 근심과
외로운 세월에 씻기고 바래져

그 어느 세상부터
생긴 대로 살아온 이 서러운 삶들 위에

어제는 인공기 오늘은 태극기
관언(關焉)할 바 없는 기폭이 나부껴 있다


                                    기(旗)의 의미 - 망양에서 / 유치환



'깃발'과 거의 유사한 배경 위에 펄럭이는 이 시는 좀 더 진전된, 구체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망양의 어느 갯마을에 생긴 대로 살아온 서러운 삶들 위에 인공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걸리며 펄럭이는 풍경은 이념의 무상(無常)을 생생하게 찍어낸다. 서로 싸우고 죽이고 증오하고 고발하는 나라와 체제의 갈등이란, 이 동막골같이 천진한 인심 위에선 얼마나 머쓱해지는 일인가. 여기서 청마가 엿보인 '기의 의미' 때문에 일제 때 쓴 시 '깃발'은 아나키즘의 혐의를 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기를 이토록 시니컬하게만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듣거라
진실로 시방 이 때이다.
이날을 놓친다면
만 번을 뉘우쳐 죽더라도 미치지 못하리니

보라
이웃이 이웃을 믿지 않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매
물로 가면 목메어 목메어 우는 여울물 소리
들로 가면 솔바람 통곡소리
그러나 이제는
여울도 마르고
산천에 초목도 다 마르고
짐승마저 깃을 거둬 자취를 감추거늘
나라도 인류도 이대로 망할까보냐

시방 이때이다
슬픔에 죽어가는 형제를 붙들어 일으키고
악한 자는 눈물로서 마음 돌이켜
이웃과 이웃
사람과 사람이 일월(日月)처럼 의지할 때는 이때어니
그렇지 아니한들
강팍한 자여 너희도
겨울 동산에 홀로 남은 이리처럼 고독히 죽고
새벽 하늘에 별빛 스러지듯
쓰러진 나라 위에 다시 나라가 쓰러지고
드디어 인류는 속절없이 망멸하리니

진실로 시방 이때이다
이 모질고 슬픈 인류의 마음을
햇빛같이 깨우칠 기(旗)를
높이 높이 들어 퍼득일 때는


                                       뉘가 이 기를 들어 높이 퍼득이게 할 것이냐/유치환


어제는 인공기, 오늘은 태극기의 그 깃발이 아니라, 모질고 슬픈 인류의 마음을 햇빛같이 깨우칠 기(旗)를 펄럭여야 한다고 청마는 말한다. 불신과 살육으로 서로를 찢는 깃발이 아니라 죽어가는 형제를 붙들어 일으키고 악한 자의 마음을 돌이키는, 하나의 깃발이다. 인심이 서로 다독여 하나의 태양으로 통일하는 그런 깃발을 청마는 꿈꾸기도 한다. 깃발은 이념 갈등이나 분단의 증오가 부질없음을 깨우쳐주는 화두이다. 그러나 그의 깃발이 이토록 맹렬하고 다급한 구호였던 건 아니다. 시인 김종길이 말했듯 청마의 시들은 깊은 명상에서 우러나온 언어와 표현들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가 아닌 단상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깃발은 바람을 먹는 생리를 지녔다. 바람을 먹지 않으면 펴지지 않는다. 청마에게 깃발의 문제는 바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애터지게 불어쌓는 바람이여
끝끝내 날 죽일 바람이여
꿈도 보람도 깡그리 불리우고
흘러흘러 드디어 예까지 왔노니

여기는 나의 청춘의 마지막 항구
오만 기폭은 일제 날 따라
한 가지 향을 하고 못 견디어 퍼덕여라

마침내 옷자락같이 찢기인
나의 목숨이 깃대에서 사라지는 날
바람이여 실상 나는 너 안에
이미 붉은 장미의 무덤을 지녔더니라


                                                             마지막 항구 / 유치환




바람과 나는 동기(同氣). 우주의 가장 묵은 일문의 후예로서 세계의 어디메도 안주할 곳을 갖지 못한 영원한 표박인. 쉼없이 뉘우치고 탄식하고 회의하고 헤매야 하는 운명, 어느 때나 내가 안식의 유혹에 이끌려 전후를 모르고 잠드는 밤이면은 나의 형뻘인 바람은 찾아와 간곡히 창문짝을 흔들고 양철지붕을 두들기며 나를 절망의 본연으로 일깨우나니
그러나 나는 알거니 신의 은총은 내게 두터워 그의 꾀임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시도 열 수 없는 집 죽음의 무덤으로 드디어 인도하여 주실 것을

                                                              바람 / 유치환



아래 시 '바람'에서 청마는 바람이 자신의 형뻘이라고 단언하며 일생 동안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의 안식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람은 절망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무덤에 가서야 마침내 바람은 자기를 더 이상 불러내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 집요한 바람이 청마의 깃발을 흔든다. 청춘의 마지막 항구에서 오만 개의 깃발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바람에 나부낀다. 깃발이 향한 방향은 바로 바람의 방향이다. 그가 바람을 원망하고 바람에 나부끼는 삶을 분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자신과 동기라고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는 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왔다.

깃발은 바람을 거슬러 펄럭이지는 못한다. 나는 여기에 그의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문제이며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항구'의 마지막 연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마침내 옷자락같이 찢기인/나의 목숨이 깃대에서 사라지는 날'에서 그는 깃발과 정확하게 포개지는 존재이다. 옷자락같이 찢긴 것은 깃발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의 내력을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옷자락을 붙잡아 저쪽으로 끌었다. 그런 소란과 굴절의 와중에 그는 깃발같이 찢어진 옷자락으로 남았다. 깃발은 그의 목숨이다. 깃대에서 사라진 깃발처럼 그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여 실상 나는 너 안에/이미 붉은 장미의 무덤을 지녔더니라'라고 그는 오래 전에 너 속에 죽어있었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내 의지로 한 것이 무엇이 있었느냐. 나를 흔든 건 네가 아니었느냐. 그러니 너는 내 무덤이었다. '나의 목숨이 깃대에서 사라지는 날'이란 표현에서 길어올려지는 비장하고 덧없는 감흥들은 시인의 마음 속에 맴돌며 몇 개의 시를 더 만들어낸다.


편편히 명암(明暗)하던 그
기억의 구름 종잇장이라도 와서 걸리렴
말을 잃고
멀거니 내민 채 공중은
벽같이 잡을 데가 없다



                                            기(旗)없는 깃대 / 유치환



한밤을 내내도록 머리맡 지붕 위에서 퍼득이며 보채어 우는 안타까운 울음소리에 나도 전전히 잠 한잠 못 이루고, 날이 밝아 일어나자 창을 열고 내다보니, 지붕 위 공중 깃대 끝 햇빛에, 어제 저녁 내리우기를 잊은, 울다 지친 아이처럼 까부라져 걸려 있는 물질 아닌 심상 하나.


                                            심상(心像) / 유치환


앞의 시는 깃발 없는 깃대의 답답함과 불안함을 특유의 감성으로 잡아챘고 뒤의 시는 미처 내리지 못한 깃발이 이튿날 아침 햇빛 아래 까부라져 있는 모양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깃발이 사라진 깃대는 말을 잃고 잡을 데 없는 공중에 내던져지듯 서있다. 깃발이 없으면 차라리 지나가던 구름 종잇장이라도 걸려있기를 바랄 만큼, 부재의 허전함이 깊다. 그는 왜 이런 시를 썼을까. 깃발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깃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편편이 명암하던 그 기억의 구름 종잇장은, 그의 내면의 켜들이리라. 구름처럼 검어졌다 밝아졌다 하는 그때그때의 마음을 깃발 대용으로 쓰려는 건, 그의 발언과 시, 그리고 태도 전부가 바람의 상황에 따라 내건 깃발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아닐까.

뒤의 시는 반대의 상황이다. 앞에선 있어야할 깃발이 없는 경우이지만 뒤는 내렸어야할 깃발이 때를 맞춰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걸려있는 상황이다. 참혹하고 가엾기는 전자나 후자나 마찬가지다. 깃발이 청마의 자아라면, 그 자아가 적재적소에 위치하지 못하고 부재하거나 불필요하게 존재한 것들에 대한 악몽들이 저런 시들로 나타난 건 아닐까. 물론 깃발 없는 깃대도, 내리지 못한 깃발도, 청마가 현실에서 만난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들은 '기의 의미'나 '뉘가 이 기를 들어'에서 보이는 이념이나 탈이념의 함의를 베물고 있지 않다. 청마의 깃발이 바람에 따라 혹은 시절에 따라 명암하는 구름 종잇장이라는 걸 웅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청마의 '깃발'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그리움'은 청마의 깃발이 왜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인지를 슬쩍 비친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 유치환



이 시에서 깃발은 보조관념이다. 바람이 센 날 더욱 더 '너'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이 그 원관념이다.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과 같다. 무엇이 같은가. 진종일 헛되이 울고 있는 것이 같다. 깃발은 깃대에 묶여있는 존재이며 바람에 따라 일어나는 존재이다. 바람에 따라 일어나긴 하지만 깃발 바깥으로 달아나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날아갈 수는 없다. 타율(他律)과 구속. 그것이 깃발이 지닌 기본적인 속성이다. '진종일 헛되이'는 대책없이 울고만 있는 그 무기력에 대한 자기 비판이다.

시 '깃발'에는 청마 특유의 명상이 낳은 아름다운 비유들이 군더더기 없고도 섬세하게 나부낀다. 시를 이끄는 전체적인 화법은 사내처럼 우렁차고 거침없는데 그 속에 글무늬를 이루는 표현들은 여인의 감수성으로 떨려나온다. 그래서 희한한 시이다. 그는 스스로 "깃발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뒤 그것에 대한 네 가지 대답을 여섯 행에 걸쳐 '진술'하고 있다.

깃발이란 무엇인가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깃발이란 무엇인가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손수건과 같은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깃발이란 무엇인가 =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순정이다
깃발이란 무엇인가 =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이다

정리하면 깃발은 아우성이며 노스탤지어이며 순정이며 애수이다. 아우성은 다급하게 지르는 비명인데 그 비명이 복수일 경우가 많다. 그것은 대중의 염원을 가리킬 수도 있다. 노스탤지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순정은 깨끗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이며 애수는 쓸쓸하고 구슬픈 마음이다. 깃발이 아우성인 까닭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목소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깃발은 표현이다. 그러나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저 펄럭거림으로 표현한다. 모순어법의 백미로 꼽히는 '소리없는 아우성'은 거기서 나왔다.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손수건은 이별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떨어지는 사람들의 애절함,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노스탤지어이다. 깃발의 펄럭임은 그 손수건을 닮았다. 물결은 푸른 해원의 이미지를 받아 잇는다.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은 물결치는 모양을 닮았다. 물결 또한 바람을 만나 일어나는 것이니 깃발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순정인가. 순정은 쉽게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첫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저렇게 깃발이 나부끼는 건 그것의 내면이 순정을 지닌 처녀처럼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상이다.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는 뭔가. 깃대이다. 깃대를 세우는 일은 어떤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이다. 맑고 곱다는 것은 그런 이념을 세우는 첫 마음이 순수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는 바로 깃발이다. 그것이 왜 하필 애수일까. 가파른 깃대 끝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독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또 이념이란 덧없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슬그머니 슬픔이 끼어드는 것은 아닐까.

이 호화롭고 현란한 은유들의 매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중요한 팩트를 놓친다. 깃발이 자아내는 곱고 쓸쓸하고 맑고 깨끗한 느낌에 마음이 팔린 나머지, 시인이 슬쩍 뚱겨놓고 간 깃발의 진상을 보지 못한다. 별 건 아니다. 청마가 그려낸 깃발은 흰 색(백로처럼 날개를 편!)이라는 점이다. 이 시의 깃발은 백기(白旗)다. 청마는 푸른 바다 앞에 백기를 걸어놓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백기는 항복과 비폭력을 의미하는 고전적인 상징이다. 청마는 왜 해원을 향해 백기를 흔들고 있을까.

1930년대 중반 일제 치하에서 청마는 깃발이 품고있는 폭력과 광기에 대해 통찰했을 것이다. 일장기 속에 들어있는 이글거리는 붉은 해를 뽑아내고 무정부의 백기(白旗)를 건 것은 당시 28세 시인의 대담한 용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의 깃발은 일본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아니라, 상대와 동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갈망하는 백기 그 자체의 평화주의였다고 본다. 그런 틀에서 보면, 왜 이 깃발이 소리없는 아우성인지, 시인이 멀리 일본을 이웃한 푸른(동해바다는 유난히 푸르다) 해원 앞에서 귀향을 암시하는 손수건을 흔드는 것인지 순정이 왜 나부끼고 애수가 왜 날개를 펴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깃발을 보고 펼쳐낸 단순한 애상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 속에 흐르는 체제와 이념에 관한 무상감을 삼엄한 당시의 눈을 피해 깃발 속에 숨겨 표현한 절창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지막 구절은 새롭게 읽혀져야 하리라.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우린 이 행들을, 처음으로 깃발을 올린 아주 오랜 옛사람을 떠올리며 읽었다. 물론 그 상념 또한 신선하고 아름답다. 깃발에 관한 한, 우리를 아주 먼 시간까지 이끌어준 놀라운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 광기가 짙어져가는 일제를 향해 일장기의 알맹이를 빼버린 깃발을 건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이렇듯 백기로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바로 청마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가?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중에서 / 이육사 1946.육사시집




아마도 청마의 시에 핏줄을 댔을 안도현의 시도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처음에 우리는 한 올의 실이었다
당기면 힘없이 뚝 끊어지고
입으로 불면 금세 날아가버리던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나뉘어진 것들을 단단하게 엮지도 못하고
옷에 단추 하나를 달 줄을 몰랐다
이어졌다가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이어지면서
사랑은 매듭을 갖는 것임을
손과 손을 맞잡고 내가 날줄이 되고
네가 씨줄이 되는 것임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한 조각 헝겊이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바람이 드나드는 구멍을 막아보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곳을 겨우 가리는 정도였다
상처에 흐르는 피를 멎게 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가 온전히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했다
아아, 우리는 슬픈 눈물이나 닦을 줄 알던
작은 손수건일 뿐이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깃발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이라면
한 올의 실, 한 조각 헝겊이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서히 깃발이 되어간다
숨죽이고 울던 밤을 훌쩍 건너
사소한 너와 나의 사이를 성큼 뛰어넘어
펄럭이며 간다
나부끼며 간다
갈라진 조국과 사상을 하나의 깃대로 세우러
우리는 바람을 흔드는 깃발이 되어간다


                                  우리는 깃발이 되어간다 / 안도현



/빈섬.
 

@ 옛날다방


2010/07/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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