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
-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 이야기] ⑬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삼복더위에 눈이 온다 죽어서 결백 증명한 두아의 원한
- ▲ 일러스트 이철원
- 원한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 문화사의 단골 주제였다. ‘햄릿(Hamlet)’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 -Cristo)’ ‘주신구라(忠臣藏)’ ‘장화홍련전’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한과 복수를 다룬 문학작품은 부지기수이며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하다. ‘햄릿’에서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와 어머니에 대한 원한으로 복수를 결심하지만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던 에드몽 당테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치밀한 복수를 이어간다. ‘주신구라’에서는 1702년에 일어났던 유명한 사건, 즉 주군을 잃은 47명의 사무라이들이 1년 동안 와신상담한 끝에 주군을 자살로 몰고간 사람에게 복수를 감행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극화하였다. ‘장화홍련전’에서는 계모의 학대로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혼이 부사에게 나타나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부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도 이에 못지않은 작품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원대 희곡 작가인 관한경(關漢卿)의 작품 ‘감천동지두아원(感天動地竇娥寃)’, 줄여서 ‘두아의 원한(竇娥寃)’이 가장 유명하다. ‘두아의 원한’은 ‘한서(漢書)’와 ‘열녀전’에 포함된 ‘동해효부(東海孝婦)’ 이야기를 토대로 하였으며, 중국의 10대 비극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중국의 10대 비극 작품
‘동해효부’에서는 일찍 과부가 된 효부가 시어머니의 재가 권유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다. 시어머니는 효부의 처지를 가엾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딸이 효부를 살인자로 고발하였다. 효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고, 우공(于公)도 그녀의 결백을 변론하였으나 태수가 끝내 효부를 처형하였고, 그때부터 지역에서는 3년 동안 가뭄이 이어졌다. 새로운 태수가 점을 치던 중 효부의 사건을 감지하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주자 즉시 큰 비가 내려 풍년을 맞이하였고 우공을 더욱 공경하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두아의 원한’은 이 이야기를 크게 변화 발전시켰다. 작품을 살펴보면 불쌍한 여자아이 두아가 나온다. 그녀는 세 살 때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 두천장(竇天章)은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려고 이웃 아주머니인 채씨(蔡氏) 집에 일곱 살 난 딸을 민며느리로 넘기고 여행비를 챙겨 떠났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두아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시어머니인 채씨와 며느리인 두아는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던 사건이 일어났다. 고리대금업을 하며 살림을 꾸리던 채씨는 어느 날 빌려준 돈을 받으러 돌팔이 의원인 새노의(賽盧醫)를 찾아갔다. 한데 이 새노의가 갑자기 살기등등하여 덤비는 게 아닌가? 다행히 장려아(張驢兒) 부자(父子)가 지나던 길에 이 장면을 목격하고 구해줘 겨우 살았다.
그런데 그 두 사람도 날건달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두 사람은 채씨와 두아의 처지를 알고는 강제로 자신들과 혼인하자고 했다. 늙고 힘이 약한 채씨는 할 수 없이 장려아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강직한 두아는 결코 장려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장려아는 앙심을 품고 새노의에게 독약을 구해 먼저 채씨를 죽이고 다음에 두아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채씨가 양내장탕이 먹고 싶다고 하여 거기에 독약을 탔는데, 아뿔싸 누가 알았겠는가? 채씨가 헛구역질이 난다며 음식을 미루어 장려아의 아버지가 마시고 죽었다. 이에 장려아는 급히 생각을 바꾸어 모든 일을 두아의 소행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는 결혼해 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며 두아를 협박했다.
그러나 두아는 관아의 공정한 판결을 믿었기에 장려아의 협박을 무시했고, 결국 누명을 쓰고 재판정에 섰다. 그런데 수준 이하의 관리였던 초주(楚州) 태수 도올(桃木兀)은 장려아의 말만 믿고 두아에게 곤장을 때리라고 명령했다. 참으로 부패한 관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두아가 혐의를 부인하자 이번에는 시어머니인 채씨를 치라고 명령했다. 이에 두아는 시어머니가 고통을 받을까 염려하여 저지르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그러자 도올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형을 언도했다.
형장의 외침, 재앙으로 내리다
형장에 끌려온 두아는 시어머니에게 눈물로 하직 인사를 올린 뒤 자신의 결백을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징조를 말했다. 자신의 목이 잘린 뒤 목에서 나온 피가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옆에 준비해 놓은 흰 비단으로 날아가 붉게 물들일 것이 하나요, 삼복더위지만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려 자신의 시체를 덮을 것이 둘이요, 그날 이후 초주에 3년 동안 가뭄이 닥치리라는 것이 셋이었다. 물론 두아의 말은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 ▲ 러시아 우표에 실린 관한경.
- 3년 후, 서울로 떠났던 두아의 아버지 두천장이 감찰어사(提刑肅政廉訪使)가 되어 초주로 시찰을 나왔다. 그날 밤 두아의 원혼이 관사로 찾아와 아버지에게 그동안의 일을 알리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두천장은 반드시 잘잘못을 가리겠노라 약속했다. 다음날 두천장은 죄인들을 심문하여 날건달 장려아와 아둔한 관리 도올 및 돌팔이 의사 새노의의 죄를 징벌하여 마침내 두아의 원한을 씻어 주었다.
‘두아의 원한’은 원나라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잘 보여준다. 민간에는 불량배가 가득하고, 관아에는 어리석고 포악한 관리들이 들끓었으며, 사회에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원 성종(成宗·테무르) 통치 기간에 부정에 연루된 탐관오리가 1만8000여명에 달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만 5000여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는 백성들은 그저 하늘을 원망할 뿐이었다. 하루 빨리 하늘의 재앙이 내려 자신들의 억울함을 속 시원히 해결해 줄 날만 고대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가? 반면 두아의 형상은 꿋꿋하고 효성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시어머니를 공경하여 재판정에서 시어머니를 위해 죄를 무릅쓰는 모습이라든지, 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에 시어머니께 누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 뒷길로 가자고 하는 마음 씀씀이는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약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두아는 재판정에서 불량배의 협박에 맞서 당당하게 결백을 주장할 줄 아는 강한 사람이었다. 누명을 쓰고 재판정에 나섰을 때에는 감히 하늘과 땅을 원망하기도 했다. 피눈물 나는 그녀의 외침을 들어보자.
해와 달은 아침저녁으로 내걸리고, 귀신은 생사여탈권을 쥐었도다!
천지시여, 맑고 탁한 걸 가려 주셔야지, 어쩌자고 도척과 안연을 혼동하시나이까? 선행을 베푸는 이는 헐벗고 수명마저 짧은데, 악행을 저지르는 놈은 부귀를 누리고 장수까지 하다니요!
천지시여, 강자를 겁내고 약자는 깔보시니, 이거야말로 물 흐르는 대로 배를 내맡기는 꼴이로군요!
땅이시여, 좋고 나쁜 것도 가리지 못하면서 땅이라 하십니까? 하늘이시여, 어질고 어리석은 것마저 따지지 못하시니 하늘 노릇은 헛하셨구려!
아, 두 줄기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도다.
1838년 영역본 해외 전파
- ▲ 두아의 사건을 파헤치는 두아의 아버지 공연 장면.
- ‘척(?)’은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귀족 통치를 반대하던 무리의 지도자였다고 한다. 봉건 통치자들에게 ‘도적(盜)’이라는 이름을 얻어 ‘도척’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로 ‘도척’하면 ‘도둑’이나 ‘악당’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안연(顔淵)’은 공자의 제자로서 가난하지만 배움을 즐긴 사람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를 ‘현자’의 전형으로 꼽는다. ‘물 흐르는 대로 배를 내맡기는 꼴’이란 ‘일을 편하게 처리하다’라는 뜻으로 권세에 빌붙어 아부한다는 뜻이다. 만물의 원천으로 존경받는 하늘과 땅을 상대로 이처럼 통렬한 비판을 가한 것이다.
도적과 현자가 뒤바뀌며, 선량한 사람이 고통 받고 악한 사람이 부귀와 장수를 누리는 사회라면 한참 잘못되지 않았는가? 그래도 두아는 인격의 존엄성을 잃지 않았다. 남들이 그녀를 하찮게 여긴다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명을 썼지만 하늘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것이라 믿었다. 결국 하늘은 그녀의 소원을 저버리지 않고 위로 솟아오른 피와, 삼복더위에 내린 눈, 3년 동안 이어진 기근을 통해 그녀의 억울함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감응시키고 땅을 감동시킨 두아의 원한(感天動地竇娥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하늘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내뱉었지만 결국에는 하늘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모순을 보임으로써 봉건사회라는 시대적 한계를 피할 수 없었던 작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1838년 영역본이 해외로 전파되면서 서양에도 많이 알려졌다. 참고로 ‘두아의 원한’의 영문 제목은 ‘Snow in midsummer(오뉴월에 내리는 눈)’이다. ‘두아의 원한’은 1919년에 상해(上海)에서 왕용춘(王永春) 등의 연출로 ‘유월설참두아(六月雪斬竇娥)’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으며, 1957년에는 상해월극원(上海越劇院)에 의해 새롭게 개편하여 공연되었다. 2003년에는 바오궈안(鮑國安)과 수진(蘇瑾) 주연으로 동명의 TV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방영되기도 하였다.
‘두아의 원한’작가 관한경은?
元代의 연극계 지도자… UN 선정 ‘세계문화를 이끈 명인’
관한경(關漢卿·태어나고 죽은 해를 알 수 없음, 약 1220~1300년)은 그의 자이고 이름은 알 수 없다. 이재수(已齋?)라는 호도 있고, 대도(大都·오늘날의 베이징) 사람이다. 그는 원에 편입된 금나라의 유민으로서 의원 출신이었다고 한다. 당시 의원은 장인(匠人)과 마찬가지로 미천한 직업이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주로 대도에서 생활했으나 노년에는 양주(揚州)와 항주(杭州)에서 보냈다. 그의 생애를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끝이다. 그밖에 그의 산곡(散曲·원~명대에 유행한 가곡) 작품을 통해 그가 호방한 성격에 반(反)봉건적인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팔방미인으로서 시와 극본뿐만 아니라 가야금과 바둑, 그림, 도박, 축구 등 못하는 것이 없었다. 관한경은 극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분장을 담당하거나 직접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희곡의 전문가이자 연극계의 지도자였다.
- ▲ 두아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공연 장면.
- 원대 희곡작가 152명의 행적과 극본 제목 400여종을 기록한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관한경의 잡극으로는 50~60개의 제목(劇目)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아의 원한’을 비롯하여 ‘구풍진(救風塵)’ ‘망강정(望江亭)’ ‘단도회(單刀會)’ 등 17~18개만 전한다. 그나마 몇몇 작품은 일부 내용만 전한다. 이들 중에는 어두운 사회 현실을 폭로하여 반항 정신을 담아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다룬 작품도 있고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그런데 내용에 상관없이 17~18개 가운데 12개의 작품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당연히 ‘두아의 원한(竇娥寃)’이다. 관한경은 이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내용에다 현실 사회의 일면을 덧붙여 극본으로 개편했다.
관한경은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다. 국제연합(UN)은 1958년에 관한경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과 함께 ‘세계문화를 이끈 명인’으로 선정하였다.
송철규 : 1965년 강원도 춘천 태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학사ㆍ석사ㆍ박사. 한중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 저서 및 논문 ‘송선생의 중국문학교실’(전3권) 등 다수. 역서 ‘제갈공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등 다수.
@ 주간조선 [2109호] 2010.06.14 →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8/2010060802075.html
@ 2010/06/18 18:19
'각국정치·比較政治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의 김정은(金正恩) (0) | 2015.12.23 |
---|---|
■ "6.25는 북침을 막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0) | 2015.12.23 |
중국경제, 과연 (경제)성장만 계속할 수 있을까 (0) | 2015.12.23 |
[본문스크랩] 美여기자, 클린턴과 함께 평양 떠나 LA로 (비공개) (0) | 2015.12.16 |
[본문스크랩] 터키 "우루무치 사태는 인종학살" 미(美) "중(中), 적절한 자제심 갖길 바라" (0) | 201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