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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동서남북] 호시노와 오(王), 김경문

雄河 2015. 11. 8. 00:42
원문출처 : [동서남북] 호시노와 오(王), 김경문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6/2008082601493.html#bbs
선우 정 도쿄특파원 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동서남북] 호시노와 오(王), 김경문   
▲ 선우 정 도쿄특파원
일본 야구 대표팀 호시노 감독은 25일 일본에 귀국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배싱(bashing·격렬한 비난)"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일본의 '공적(公敵) 1위'는 호시노다. 일본인이 그에게 던지는 비난은 이미 보도된 대로 "(중국에서) 돌아오지 말라"는 말로 압축될 만큼 격하다.

사실 호시노는 예선에서 쿠바·한국·미국에 연거푸 졌음에도 여론의 비판을 받지 않았다. 4강전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한다는 점 때문에, 호시노의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에 일본 언론은 격려 메시지만 연발했을 뿐이다. 호시노가 '국민적 배싱'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준결승에서 한국에 진 직후였다. 그 동안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일본 국민의 집단적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하다.

2006년 3월, 한국은 비슷한 승리를 거뒀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일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한 것이다. 일본은 다음 날 멕시코 덕분에 기적적으로 부활했지만, 한국에 진 그날 밤 일본의 충격은 이번 못지않았다. 니혼(日本)TV는 '일본열도가 한숨'이란 제목을 뽑았다. 기적을 기대하긴 절대 무리였으니, 일본 전체가 이미 탈락한 것으로 체념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과 달리, 그날 밤엔 '배싱'이 전혀 없었다. 감독이 '오(王)', 한국에선 '왕정치'란 이름으로 익숙한 오 사다하루(王貞治)였기 때문이다. 오 감독은 캐릭터가 호시노와 정반대 인물이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오 감독은 실력으로 카리스마를 얻었고, 호시노 감독은 입으로 카리스마를 얻었다고 할까.

대만인으로 태어나 일본 야구사(史)를 다시 쓴 오 감독은 유약해 보일 만큼 착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남을 공격해 사람을 통쾌하게 만들어줄 언변도 없다. 2006년 한국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직후, "상대방의 승리를 향한 집념이 우리를 앞섰다"고 말하던 적장(敵將)의 겸손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반면 호시노는 대표팀 감독에 결정되고도 프로야구 해설을 진행할 만큼 달변가였다. 끝없이 남을 공격하는 것이 장기였다. 시즌 중 헛스윙을 휘두르던 이승엽을 향해서도, "불쌍하다" "저 정도면 스스로 벤치에 들어가야 옳은 것 아닌가"라며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았다. 일본 시청자들의 속마음을 대신 드러내줬기 때문일까? 변변한 실적도 없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올라섰을 만큼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2년 전 한국전 패배로 일본 대표팀이 짐을 쌌더라도, 오 감독은 일본에 귀국한 뒤에 지금 호시노 감독처럼 '배싱'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겸손한 사람에게 욕할 수 없는 세상 인심은 어디나 비슷하다. 당시 대신 누군가 배싱을 당했다면, 감독 호시노처럼 시종일관 입으로 야구를 하던 선수 이치로였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한 장면은 모자를 벗어 호시노 감독에게 인사하던 김경문 감독의 모습이었다. 박태환의 싱싱한 포효보다 멋졌다. 2006년 WBC의 일본전 승리 직후, 한국 선수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타디움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때 그 모습에서 허공에 발산하는 감동을 느꼈다면, 이번엔 내면으로 꺾여들어와 마음 속에 잔잔히 남는 감동을 느꼈다고 할까. 한국 야구는 훨씬 성숙해졌으며, 그래서 감동을 주는 차원까지 높아진 것이다.

똑같은 승리라도 존경받는 승리와 미움받는 승리가 있다. 그 차이는 겸손이다. 한국이 승리하고도 미움을 받는다면, 당장 자신이 겸손했는지를 성찰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 야구의 승리를 통해 전에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낀다. 한국은 겸손하게 이겼고, 일본은 오만하게 졌다는 것이다.

2008/08/28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