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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비화(2)--박정희와 채명신

雄河 2015. 12. 25. 19:24

현대사 비화(2)--박정희 대통령과 채명신 장군

 

박정희와 채명신, 충성의 댓가는 '남미 행(行) 좌천(左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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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1968, 국회=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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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

 

 

장병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영어도 잘했고 국제감각도 있어 미국과 잘 통했던, 파월 사령관 채명신 장군. 그야말로 인기 '짱'이었다. '미스터 퍼펙트'로 불릴 정도로 남자가 갖추고 있으면 좋을 법한 면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박대통령의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대통령은 월남에 파병한 일로 인하여, 미국 정부로부터 그 댓가성으로 상당한 정치자금을 지원받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전장에서 수많은 군인들을 '죽인' 응분의 보답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베트남인들은 같은 동족끼리라 그런지 호지명이 이끄는 월맹(북베트남)군과 그다지 싸울 의욕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미군은 먼지역에서 '대포(장거리포)'나 펑펑 쏴대고 있었고 때때로 공습(폭격)이나 감행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최전선에서 적과 맞닥뜨리며 목숨을 걸고 육탄전을 싸운 이들은 역시 한국군이었다.

(이 전쟁에서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많은 한국 장병들의 영전에 고개 숙여 痛惜의 念을 표합니다.)

 

미국도 그것을 인정했기에, 박정희 정권에 선심을 쓰고자 했고 한국에 막대한 국가건설자원을 지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베트남 특수로 인하여 한국경제는 활력을 얻을 수 있었고, 경제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렇게 한국에게는 아주 중요했던 베트남 지역을 '별 탈 없이' 관장했던 사람이 바로 초대사령관 채명신 장군이었으니, 박정희 대통령도 그 공로를 치하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월남에서 불러다가 요직의 장관 자리 하나 정도는 줄 수도 있고, 줘야만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은 계속 채명신 장관을 외면하고 있었다.   

             

채명신 장군도 자신이 처한 이 미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비책을 하나 마련한다. 이 채명신 장군의 "절벽 활극"를 플레이 백으로 보여 드렸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해리슨포드의 인디아나 존스의 활극보다도, 숀 코네리의 007작전보다도 더 스릴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ㅎㅎ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 일대 절벽이나 동굴지역에 (바다)제비들이 지어놓은 제비집(ツバメの巣)을 채집했다고 한다. 천적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종족보존을 위해 이렇게 절벽에다 집을 집고 새끼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비집(ツバメの巣)이, 생선뼈 등 바다에서 수집한 영양가 있는 물질과 제비들이 입에서 토해낸 물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요리를 하여 먹으면 엄청나게 몸에 좋다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황실요리로서 각광을 받아 황제가 많이 섭렵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쉬운 말로 이야기하면 엄청난 '정력제'인 셈인다. 

(최근 NHK방송에서는 일종의 '제비집'에 관한 말레이시아에서의 상황을 '월드 웨이브' 특집으로 다뤘다.)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의 절벽지역에서 이 제비집을 다수 채취하여, 충성의 표시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당량을 보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자기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경계심을 풀게해 보려고 했던 채명신의 안간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하, 채명신 장군은 왜 너무 잘나 가지고(상술한 대로, 인물이 좋고,부하들이 잘 따르고, 영어를 잘하고, 그래서 국제감각을 갖추고 있었고, 미국과도 의사소통이 잘 이뤄졌던 점 등등), '각하'(朴대통령)의 경계심을 사게 됐는지...이것도 다재・다복도 불행이 될 수 있다는 역사에서의 하나의 실례(実例)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그래도 채명신 장군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제2대 파월사령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한 채명신 장군에게는 어떠한 보직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기껏해야 말년에 남미의 어느 '션찮은' 나라의 대사직 한번 수행하고, 채명신이라는 인생의 막은 그냥 그렇게 조용히 내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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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비집을 지어 놓은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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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비집

 

 

사족】어느 국가원수도 능력과 실력을 갖춘 외교부(외무부)장관이 해외무대를 누비고 다니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외교부 장관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며 대통령의 위상을 뛰어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하고 미국인사들과 친했던 채명신 장군을, 마음만 내켰다면 박대통령도 외교부장관에 충분히 임명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도 키신저 국무장관의 외교적 활약이 워낙 두드러져, 국제무대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통령-외교(통상)부 장관 파트너 관계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든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김성환 장관은 그야말로 어느 곳(단계)에서도 존재감이나 역할이 없었다. 없으나마나한 존재가 아니었는가?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MB가 '똑똑한' 외교장관은 기용하지를 않는 것이다. 외교무대에서 날릴 수 있는 역량있는 외교장관이 일을 잘 수행한다면, MB자신의 이미지와 위상이 추락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는 MB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어느나라에서건 어느 대통령도 일 잘하는 외무장관이 날렵하게 외교무대를 휘저으며 인기인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관련글) 박정희-채명신, 쿠데타 동지에서 疑心暗鬼의 사이로 → 이곳을 클릭하세요.

 


2012/07/17 18:35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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