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한국사회

노인과 청년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인가?

雄河 2015. 12. 11. 06:04

청년과 노인들이 고쳐야 할 점


노인과 청년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인가?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80년대였다.
서울 흑석동 근방에서 밤에 출발하여 신촌 쪽으로 달리는 버스 안이었다.
한 젊은 청년이 좌석에 앉아있다.

이 때 좀 혼란스런 모습으로 한 노인이 버스에 올라탄다.
청년이 앉아있는 자리 쪽으로 간다.

그리고는 헛기침과 여러 부적절한 다리동작을 한다.

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분명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요청이자 압박의 표시였다.


한국의 유교적 사회의 전통으로서는, 이 정도면, 분명 청년이 자리를 양보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라울 일은, 이 청년은 같이 노인의 얼굴을 한번 빤히 쳐다보더니,

아랑 곳 없다는 듯이 자기가 앉은 자리를 꽉 고수하는 것이었다.

“이 노인이 뭔데 추근덕 거려?”라고 하는 듯한 청년의 표정이었다.



노인도 몸과 다리를 청년 쪽에 일부러 부딛치는 행위를 하며 청년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었다.

이리 되면, 그 청년도 그 노인도, 거기가 거기, 50보 100보였다.

늦은 밤, 도회지의 복판에서 벌어진 이 민망스런 실랑이는 버스안의 분위기를 아주 냉냉하고 비인간적이며 불유쾌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결국, 신촌 근처에서 내릴 때까지 이 청년은 노인의 접촉행위를 물리치면서, “너무나 두꺼운 얼굴”로, 자신의 젊은 몸뚱아리의 안락을 지켜낸 것이었다.



하도 의아스러운 청년이었기에, 또 내리는 버스 정류장이 이 청년과 같았기 때문에, 버스를 내린 후 이 청년에게 물어봤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의 마음도 편했지 않았을까? 앉아있는 동안 당신의 몸은 편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갈등을 일으키며 무척 불편했을텐데...? ”



그러나 이 청년의 입에서는 아주 기묘한 말이 쏟아졌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없이 자기이익만을 탐내며 추잡하게 산 얼굴이었다. 이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



허허, 정말로 놀라웁고 맹랑한 청년의 말이었다.

청년의 말에 따르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그가 살아온 인생의 이력(履歷)이나 삶의 내용까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도인(道人)의 경지란 말인가? 젊은 나이에...



그런데. 물어본 바에 의하면, 이 청년은 서울시내 한 야간대학원 (사회복지학과)을 다니며 사회사업과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진보성향의 지식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며, 깊은 산속에서 수도생활을 한 특이한 경험도 쌓고 있었다.



이 청년이 지향하는 바는 이른바 사회복지-사회개혁이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의 행동이 겨우겨우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할 수도 있겠다.


진보성향의 사회개혁론자들에게 노인은 사실상 무시되기 일쑤라는 이야기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정동영 후보가 노인비하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무튼, 이날 밤, 버스 안에서의 노인과 청년의 살벌한(?) 자리 실랑이는, 두 사람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으리라.



노인들은 우선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인생에 있어 몇 번쯤은 성공할 기회, 이른바 출세할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 자가용이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그 노인은 성공-출세할 기회를 놓친 사람이니, 이제 자신의 처지를 감수해내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일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 자기자신이 출세하지 못했으면, 자식들 공부라도 잘 시켜, 그러니까 자식들이라도 성공-출세시켜, 자식들 차라도 타고 타니면 좋질 않겠는가? 자식들이 태워다 주는 차를 타고 다니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인생도 출세를 못하고, 자식들도 출세를 못시켰다면, 마지막 하나, 즉 이웃들에게 덕을 베풀고 선행을 쌓아, 그 이웃들이 보은의 마음에서 자가용으로 태워다주고, 모셔다주고 하게하면 되질 않겠는가?



그러니까, 그 버스 안에서 그 노인은 그렇게 강팍하게 나오지 말고, “그래, 젊은이가 공부하는데 얼마나 피곤할텐가? 나는 괜찮으니 자네가 앉아가게...” 라고 했으면, 그런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왔다면, 그 버스안에서의 살벌한 기운은 가라앉았을 것이었을텐데 ..



그리고 그 청년은 더 큰 반성을 하고 고쳐야할 점이 있다. “그래, 나도 늙으면 저리 되겠지, 그러니까 내가 양보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탄 노인을 연민하면서 자리를 양보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노인과 청년, 쌍방이 위와 같은 생각을 했더라면, 버스 안은 온기 있고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을 것인데...


@ 2009/06/01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