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한국사회

한국 개신교의 문화적 영향력

雄河 2015. 12. 4. 08:39

KPI 칼럼


한국 개신교의 문화적 영향력 강화전략은?

이기홍 (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차별성’과 ‘매력’이 필요한 한국 교회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이번 기회에 교회의 사회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 볼 것을 제안한다. 한 세력이 사회 일반에 대해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차별성과 매력을 지녀야 한다. 차별성이 다른 점을 강조하는 정적 개념이라면, 매력은 그곳으로 이끄는 힘과 관련된 동적 개념이다.

교회 문화의 일부는 대중과의 교류에 상당히 성공하기도 했다. 일례를 들자면 기독교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출발하였으나 일반 대중들에게 급속히 전이된 노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 노래는 어떻게 교회의 경계를 넘어 일반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될 수 있었는가? 필자는 ‘갑은 을을 사랑한다’는 식의 단순하고 극화된 메시지에 식상한 대중들에게 ‘당신’ 즉 개별적 청자(聽者)가 태어난 목적 자체가 사랑 받기 위함이라는 차별적 메시지가 화사하고 세련된 멜로디를 타고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성공의 모범이 한국 개신교의 다른 부분에 적용될 수는 없을까?

부부 상담 전문가로부터 들은 말이다. 최근 이혼율을 보면 크리스천들과 불신자들 간에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 유명한 크리스천 커플이 혼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가십 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중 문화계에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이들의 암울한 자살 소식 역시 연이어 보도되었다. 청년 시절까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이들일수록 사회에 진출했을 때 급속도로 세속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예들을 보면 현재 한국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매력 문화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차별성도 거의 잃은 듯하다.

과거의 한국 개신교는 달랐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개신교는 당시 선진적이라고 여겼던 서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신흥 중산층과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근거해서 한국 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앞서나가는 측면을 보여주었다. 일부 교파는 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도 했고, 이주 노동이 시작될 무렵 외국인들을 돕는 데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결과보다는 수단과 과정을 중시하는 노동 윤리, 당시 사회가 그리 배려하지 않았던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물질적 성공보다 정신적 평안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등은 당시 개신교도에게는 어색하지 않게 들렸다. 하지만 요즘의 한국 개신교는 보수정치와 유착하고, 상업화되고 대자본화된 제도종교의 모습을 보이며, 고성장/산업화 시대의 일시적 유행 정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 초기의 차별성과 매력


초기 개신교는 차별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엄청난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하며 세계사에 등장하였다. 혁신적 이념을 제시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힘이 있었던 것이다.

베버(Weber)는 백여 년 전에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개신교가 창발한 새로운 사상 즉 직업소명설과 예정 교리에 주목한 바 있다. 이러한 가치관들이 세속적 직업에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노동자로서의 상시적 긴장을 요구하는 금욕주의를 확산시킴으로써 근대 경제 시스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그는 보았다. 그 내용은 풀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개신교적 사고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가치관을 보편화시켰다는 것이다. 베버는 당시 신흥 상공업 및 기술직과 근대 경제가 상대적으로 발전했던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화란 등에 개신교도가 과분포되어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전근대 유럽에서는 성직과 세속 직업 간의 우열이 뚜렷했고 그것이 신분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런 차별을 성서에 근거한 만인제사장설 등을 바탕으로 비판하였고, 무슨 직업이든 신의 부름(vocation)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업소명설을 확산시킴으로써 전근대적 직업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강한 노동 의욕을 일반인들에게 고취시켰다.

베버는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 가는 태도 역시 당시 개신교도의 라이프스타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한다. 중세 가톨릭의 구원관에서는 신앙뿐 아니라 선행도 필수적이었다. 단 선행의 정의가 매우 유동적이어서 한 때 교황청에서는 죽은 이들의 천국 진입을 염원하는 속죄기도 신청서를 구입하는 것도 선행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면죄부 관련 정책은 종교 개혁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구원 교리 자체를 재검토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해 깔뱅(Calvin)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그 구원이 절대자인 신의 결정에 따라 탄생 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으므로 이생에서의 어떠한 선행도 구원 여부를 바꿀 수 없다는 예정 교리를 많은 개신교도가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초기 개신교인들이 구원받은 사람이 나타내야 할 징표로서 상시적 긴장감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육체적 쾌락을 절제하는 금욕적 노동 윤리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근대 초기의 개신교는 그야말로 ‘고쳐 새로운 가르침(改新敎)’이었다. 베버의 설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면은 근대 초기 유럽의 개신교도가 보여준 문화적 차별성과 그에 따른 사회 변혁의 에너지이다. 그들은 비록 신흥 세력이었으나 부의 추구 자체를 죄악시하기도 했던 전근대적 경제관을 갈아치우는 영향력을 발휘했고, 현재 전세계를 관통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다. 특히 유대 혈통이었으나 정치적 압력 때문에 선대에 개신교로 개종했던 베버가 이러한 설명을 했다는 점은 당시 개신교의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고전적 개념으로 취급되는 그람시(Gramsci)의 ‘문화 정치’, 파슨스(Parsons)가 지적한 가치 체계로서의 ‘잠재성(latency)’, 부르디외(Bourdieu)가 제시한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 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상징, 관념, 사상 등을 반영하는 습관과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문화적 요소가 중요함을 지지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특정 집단의 정체성 및 행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그 집단이 외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중의 일상생활까지 지배하는 문화적 기제로서 기능한다. 특히 그람시와 부르디외의 이론은 한 세력의 문화가 외부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차별성뿐 아니라 매력을 지녀야 한다는 실천적 함의를 제공한다.


복음주의는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개신교가 문화적 영향력 없는 집단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차별성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일반 대중들에게 이념으로서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로서 매력이 없고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노골화된 개신교에 대한 집단적 저항 특히 인터넷 상에서의 공격은 당분간 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집단 내에도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탄생에 개신교계 지지가 중요했다는 일반 대중의 인식은 촛불시위 이후 개신교 활동에 큰 족쇄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는 서구의 대중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막차에 허둥거리며 올라탔다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가 이러한 진부함을 스스로 털어내지 못하면 뉴에이지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바탕으로 한 비종교적이고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한국 사회의 고령화와 다문화화, 한반도 통일 문제 등의 쟁점에 대해 모종의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세속 문화의 변화조차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집단으로 낙오될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이념적 역기능도 현재와 같은 문화적 고립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계 주류가 공유해 온 하위문화적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주의’일 것이다. 복음주의는 그 의미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단, 자유주의 신학 등과 구별된 정통 신학의 계승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주로 쓰여 왔다. 한국 개신교에 지대한 영향을 준 미국에서는 복음주의가 근본주의적 크리스천, 극우파 정치인, 연방제 반대 그룹, 미국 주류 문화로부터 고립되다시피 한 남부의 바이블 벨트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이 많이 분포한 남부에 인종차별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나, 민병대(militia)들이 기독교적 이념으로 무장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다문화적 가치관을 지지해 온 미국의 지식인들이 보수적 기독교의 문화적 독선과 후진성을 비판할 때에 자주 드는 예들이다. 한국의 복음주의에도 이러한 경향들이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기우일까?

한국의 복음주의는 세속과의 구별을 강조한다. 그런 요구는 이원론적 경향을 불가피하게 동반하며, 이에 충실한 크리스천들이 일상생활에서 한국사회에 파고 들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도록 하기도 한다. 혹시 그들은 현재 일반 대중과 단절된 채 정신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가톨릭처럼 하나의 조직을 갖춘 일부 종교와는 달리 한국 개신교는 전체를 대표하는 단일한 아이콘이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반 대중들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람들의 현실감이 매우 떨어진 행동이나 발언을 통해 한국 개신교를 외면하게 된다. 그들이 갖는 묘한 상징성 때문에 그들과 다른 개신교인들까지도 도매금으로 비판 받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가족친화적 지역친화적 여가 문화를 선점하자


만약 그리스도의 가르침(基督敎 또는 Christianity) 외의 이념이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면, 복음주의와 같은 이념은 신도와 일반 대중들에게 약간은 더 친화적이고 명확한 방향으로 개혁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한국 개신교는 일상생활의 측면에서 더욱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전략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 한 예로서 필자는 현행 교회 활동과 연계하여 대중적 라이프스타일로서의 가족친화적이고 지역친화적인 여가 문화의 개발을 제안하고 싶다.

과거 고도성장 시대의 여가 활동은 상당 부분 기업 업무의 연장선에서 성인 남성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여성의 취업률 증가, 고령화, 주 5일 근무제의 확산, 다문화화 등에 기인한 가족 중심적 사고가 보편화되면서 여가 활동의 주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화적 수요들 중 하나는 저성장 시대에 맞는 가족 및 지역 친화적 여가 문화이다. 한국 개신교가 문화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선점하기를 희망한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교회 조직을 더욱 철저히 가족 단위로 구성하고, 지역 봉사 및 선교 역시 같은 단위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중심의 여가 생활은 주로 주말에 집중되므로 일단 전통적 교회 프로그램들과 시간상 충돌할 수밖에 없다. 만족도가 높은 여가 문화일수록 과시적이며 고비용이라는 점과 일부 사교육 제공자들이 이 부문의 경쟁자라는 점도 한국 교회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이를 위해 영유아, 어르신, 장애우, 새터민, 이주 노동자 등 특별 시설과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에 대해 각 지역 교회가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교회가 더욱 가족친화적, 지역 친화적으로 변하여 대중의 일상생활에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구 변동 추이를 꼭 감안하기 바란다. 2010년대 말을 정점으로 한국의 총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추계되는데, 이미 감소 추세인 개신교 인구는 그때 이후 더욱 가파르게 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은 2020년대 중후반에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인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가 될 전망이다. 지금 상태로서는 40대 이하 교인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지 않을 경우, 개신교내 신앙의 세대 간 전승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연령 집단은 한때 한국 사회 세대 논쟁의 초점이었던 신세대가 시작되는 문지방이자, 만혼, 독신, 저출산 등의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현재 한국 전체 인구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교회 내에서보다 훨씬 크다. 대부분의 매력적인 문화가 동일 연령 집단 내에서 우선적으로 확산되는 경향을 감안하면, 바로 그 연령대가 결정적 전환점(tipping point)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교회 내의 이런 인구 불균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신교 인구는 한국 사회 전체보다 더욱 급속히 고령화될 수밖에 없다. 고령화 과정에서 고령 세대를 교회 내에 유지시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에 비해 교회가 더욱 고령화되는 것은 교회의 활동성을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젊은 세대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더더욱 필요하다. 또한 날로 증가하는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및 독신 가구를 포용하기 위해 교회는 어떠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한국 개신교가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구 변동의 측면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범교회적 전략을 짜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출처] 한국개신교의 문화적 영향력 강화전략은?(이기홍) |작성자 좋은친구



2009/04/30 16:20 

 


이희호와 DJ는 종교가 달랐다. 이희호는 개신교인 감리교 신자, DJ는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가 서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희호와 DJ는 1962년 결혼 이후에도 신앙을 한쪽으로 합치지 않았고, 원래대로의 신앙을 유지했다. 식사를 할 때도 DJ는 천주교식으로 성호를 그었고, 이희호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