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 Lee(雄河)'s Diary/雄河 일기

기다림 -- 메시아는 지하철로 오시나요? (메리 크리스마스!)

雄河 2020. 12. 5. 12:42

기다림 -- 메시아는 지하철로 오시나요? (메리 크리스마스!)

 

 

오오, 두려워. 아아, 곤란해.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당신이지 않아.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남편. 아니요. 연인. 아니에요. 친구. 싫어. 돈. 설마. 망령. 오오, 싫다!

 

더 온화하고, 확 밝은, 훌륭한 자(者). 웬지 잘은 몰라도.

 

예컨대 봄(春)과 같은 것. 아니, 달라요. 파란 잎(青葉). 오월. 보리밭을 흘러가는 맑은 물(清水). 역시 아니에요.

아아, 그렇지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슴이 뛰며 기다리고 있어요. 바로 눈앞을 총총 사람들이 지나가요.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에요.

 

나는 쇼핑바구니를 들고 연신 몸을 떨면서 일심 일심(一心 一心)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매일, 매일, 역(駅)에 마중 나가, 허무하게 집에 돌아오는 스무살 처녀를 비웃지 말고, 하여튼 기억해 두어 주세요.

 

이 작은 역의 이름을 일부러 가르쳐 드리는 일은 하지 않겠어요. 가르쳐 드리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 이 스무살 처녀는 무엇을 그리 기다리는 것일까요? 소피아 로렌이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기다리듯('해바라기'), 그리어 가슨이 로널드 콜먼을 기다리듯('마음의 행로'), 로렌 바콜이 험프리 보가트를 기다리듯('키 라르고'), 미치 게이너가 롯사노 브라찌를 기다리듯('남태평양'), 그런 기다림일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절절한 사랑이었다면 차라리 읽기 쉽고, 그래서 세인의 관심을 좀더 끌었을 것 같습니다.

저 처녀가 기다리는 존재가 과연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저 처녀는 자기의 정체에 대해서도 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하면서, 지금은 밝히지를 않고 있네요.

 

저 처녀의 독백은 확실히 철학적이군요.

때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저 처녀의 기다림의 대상이, 지금의 어지러운 세상에서의 삶의 고통을 치유해줄 신국(神国), 구원(救援), 메시아 등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부질 없는) 생각도 문뜩 듭니다.

 

그렇다면 메시아(messiah)는 구름타고 오시는 게 아니고, 지하철로 오시나요? ㅋ~!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들 각자 알아서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 고도를 기다리며. 太宰治. 待つ. 神国의 待望. 死. 救援. Messi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