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한국사회

(앙코르) 역사의 저주(?) -- 조선 왕들 / 渚にて

雄河 2015. 12. 25. 01:55

사극 드라마

 

세조(수양대군)와 그 후의 조선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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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땅을 살육의 “킬링 필드”로 물들인 세조는, 살아 생전에도 그 업보에 시달렸고, 왕조가 그 명운을 다할 때까지 이 살육의 참담한 업보는 조선왕실에 그 어두운 그림자를 내내 드리우고 있었다는 게 어느 역사학자의 직언이다.


세조는 말년에 가서 종기와 창병으로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도 한다. 그 때 조선 백성들은 이를 ‘천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창병이 ‘성병’이었었다는 설도 있다. 수양대군은 젊은 날부터 아주 유명한 호색한이었다고 하니, 이 성병설도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수빈 한씨의 남편)도 이름 모를 염병에 걸려 젊은 날에 세상을 떴다.


의경세자의 동생 해양대군(예종)도 원인 모를 죽음을 당했다. sbs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내시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성종은 윤소화(폐비 윤씨)에게 사랑을 바쳤으나, 윤소화의 손톱에 얼굴을 긁히면서 그녀를 궐밖으로 내쫓았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원수를 갚는다고 인수대비를 내동댕이쳤고, 폐비 윤씨를 적대시했던 궁중-궁밖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피를 보았다.

연산군은 또 하나 큰 일을 벌이는데, 월산군의 미망인 박씨를 겁탈하여 사내의 욕심을 채운 일이었다. 월산군은 자산군(성종)의 윗형이 되니, 연산군은 큰어머니를 강간한 것이었다.


박원종은 자신의 누이였던 미망인 박씨가 연산군에 강간을 당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세우니, 중종은 허수아비가 되어 박원종을 포함한 반정 공신들에게 휘둘렸다.


이후도 변변치 못한 임금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나같이 칠칠치 못한 임금들이다.

명종, 인종,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도망만 다녔고, 광해군도 정치를 그르쳤다.

인조는 청나라의 무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그리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세자와 세자빈을 심하게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한다.


영조와 정조는 선정을 펼친 임금으로 꼽히지만, 영조는 그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어서 늘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품고 살았다.

정조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대왕대비(영조의 비)의 견제와 등쌀에 시달리다 결국 독살을 당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흘러 다녔다.


철종은 세칭 ‘강화도 촌놈’이었고, 조선왕조의 왕들은 수십년간 계속되는 안동김씨의 세도에 맥을 추지 못하였다.


대원군이 한 때 안동김씨의 그물망을 빠져나오며 반짝했으나, 민비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시아버지-며느리 사움에서 패배하여 실권을 놓는다.


고종은 나라를 뺏겼으며, 첫아들 영친왕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다. 고종과 민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마지막 임금” 순종은 어떤 임금인지 그 정체성도 확인되지 않은 맹한 임금이었고, 그 밖의 고종의 아들들은 해외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나, 어쨌다나...?


이 모든 왕조의 저주의 세월과 비참한 몰락의 첫 발단은, 바로 수양대군의 “킬링 필드”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어느 역사학도의 지적이다.


수양대군 때 한번 얽혔던 업보가, 그 후의 여러 왕들을 거치며 심하게 뒤틀리면서, 저주의 세월을 거치며 조선왕조는 끝내 몰락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   추억의 영화 감상

On the Beach (渚にて 1959・米)

 

出演:그레고리 펙(グレゴリー・ペック)
    에바 가드너(エバ・ガードナー)
    안소니 파킨스(アンソニー・パーキンス)
    프레드 아스테어(フレッド・アステア)

 

渚にて

 

  「渚にて(나기사니테)」 라스트 신

 


@ 2011/07/26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