雄河 2015. 12. 26. 20:20

운명의 남자 여자(MWD) 

김철수와 전혜린

 

 

 

 

 

 

 

EBS의 '명동백작'에서 소개됐던 전혜린(1934-65). 그녀의 천재성과 지적 우월성은 주변을 압도했다고 한다.

 

'헌법학 (개론)'의 대명사인 김철수 교수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유학했으나, 천재 전혜린은 독일서 단숨에 학위를 땄으나, 김철수 유학생은 독일에서 고생고생하다가 국내로 들어와 국내에서 겨우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전혜린과 김철수 교수는 서로 결혼을 하기는 했으나, 유학시절의 실력차(?)가 '빌미'가 됐던지 전혜린은 끝내 김철수 교수를 "차버렸다고" 한다. 요즘의 시쳇말로 표현하면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린 셈인가. ㅎ~!

 

법과대학생들에게는 고전이요 명저로 알려진 '헌법학 (개론)'을 썼으며 서울대 교수였던 그 김철수 교수를 "차버렸으니", 전혜린이 얼마나 도도하고 고고하고 초월적인 여자였는지를 알 수가 있겠다. 

 

(김철수 교수는 지금도 그 저술 '헌법학 (개론)'의 인세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고교생들에 있어 '정통(=성문)종합영어'나 '수학Ⅰ・Ⅱ의 정석'처럼, 법과대학 학생들에게는 지금도 김교수의 그 저술이 '필독서(바이블?)'로 인식・인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균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결국 전혜린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고독한 천재여성의 삶을 지탱시켜줄 의지처는 없었고, 그녀의 고고하고 경애(境涯)적인 삶을 구원해줄 '남자'는 없었던 것 같다.

 

@ 전혜린은 제자 남학생과의 '로맨스'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 무샤코우지 킨히데(武者小路 公秀, UN대학 부학장)도 외국인 여학생 제자와의 '세기의 로맨스'로 세상을 놀라게 했으니, 큰 눈(大目)으로 봐 주면 남녀간의 운명적인 '러브 어페어'로 그들의 일을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서른두살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작가 전혜린」 → 이곳을 클릭하세요.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이곳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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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혜린  

포스트 상세정보 :

출처 : Naver / 블로거: 대없낭

원문 : http://blog.naver.com/yusu74/80019334676  

2013/12/2 18:10

 

 

전혜린

  폼에 살고 폼에 죽은 불세출의 "폼.생.폼.사."신화가 되버린 전혜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

blog.naver.com

 

 

 

 

 

폼에 살고 폼에 죽은 불세출의 "폼.생.폼.사."신화가 되버린 전혜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때 삐리리(?)에 중독되어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던 내게 낭만영웅 전혜린을 최초로 소개했던 친구. 사시미 칼날에 빛나는 예리한 감수성을 한 껏 뽐내보지도 못한 채 구질구질한 삶에 치여 사는 그 꼬라지란 전혜린만큼 치열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전혜린은 애비라도 잘 만나 인생 원없이 폼나게 살다 갔지만 지지리 궁상에 너덜너덜 찢긴 너의 감수성은 어따 써먹어야 할끄나....

 

폼생폼사 신화에 자빠진 두 번째 인생, 학창시절 미팅에서 만난 남자아이다. 생긴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볼 건 하나두 없었지만 해박한 지식과 현란한 말빨에 뻑 가버렸다. 그 아이는 자기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여자는 전혜린 한 명 밖에 없다구 나를 무쟈게 개무시 하더니 어느날 정도상의 "그 여자 전혜린"을 내 손에 쥐어준 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사실은 요따구로 드라마틱하게 헤어진 게 아니다. 내 돈 5만원 떼어먹고 치사하게 내빼버렸다. 그때 그 사람, 얼굴은 잊었지만 이름만은 아직도 기억해요. 만식아~ 내 돈 내놔!!)

 

이들 외에도 전혜린하면 몇 가지 단어나 단상이 떠오른데, 어린시절 그 이름만 생각해도 불에 데인 듯 명치 끝이 후끈거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강렬한 문체 곳곳에 보이는 한 없는 감성적 직관은 나로 하여금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마치 신들린듯한 광기어린 모습의 사진을 보며,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장난이 아니구나" 하며 막연한 존경마저 보냈던 것이다. 게다가 새파란 나이에 요절했으니 천재의 필요 충분조건은 거저 먹고 들어간 셈이다.

 

강렬한 문체, 다소 신비주의적이지만 칼날 같은 인식과 사유, 자살로 마감한 젊은 생애. 게다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간 독일의 뮌헨대학 시절… "에어 프랑스에서 내리던 날 뮌헨은 축축한 습기를 가득 머금은 회색빛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녀의 수필집에서 이 부분을 아직도 외울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때 써내려 간 글에는 왜 그리도 회색이란 단어가 많았는지... 흐미~ 쪽 팔려라~~ )

 

또한 모교인 서울 법대 교수로의 임용. 결혼과 육아 그리고 이혼. 한참 어린 제자와의 불꽃 같은 사랑. 이 어린 제자 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습작의 시를 써서 갖다 받쳤고, 이혼은 했지만 제법 어린(?) 여교수는 날마다 장문의 연애편지를 제자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어린 제자의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와, 전혜린 앞에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 그리고 전혜린은 어린 제자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네가 날아올 땐 난 네가 독수린 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새에 지나지 않았어!" 그녀는 제자와 이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엉청난 번민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가까운 지인들은 입을 모아 이 사건이 자살의 계기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폭풍우를 비상하는 독수리의 불꽃 같은 생애

 

이렇게 전혜린에 대한 동경은 어린 시절 불도장에 데인 듯 강렬한 자국을 남겼다. 그 동경은 또한 그녀의 번역서인 루이제 린저나,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들의 글을 탐닉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깊은 터널을 나와 뒤를 돌아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녀의 책이라 해봐야 번역서 몇 권에 수필집 달랑 한 권이 아닌가. 그조차 자기가 번역했던 하인리힌 뵐의 동명 소설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제목도 똑 같았고. 게다가 유고집으로... 이거 혹시 야바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나의 전혜린 숭배는 마치 홍역과도 같았다. 앓고 나니 그저 무덤덤하게 다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글에서 고질병 같던 회색이니 잿빛이니 하는 단어역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녀의 글을 읽고선 부정은 다시 부정이 되어 전혜린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 변했다. 숭배까지는 아니라 해도 젊은 시절 내가 앓던 홍역의 정체에 대한 수긍으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이였다.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 관념, 지식에 대한 광적인 숭배, 그리고 그 두 세계의 완전한 분리"는 "영아기부터 싹트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붙어다니는 병"이었다. 이것이 전혜린 신화에 몰입하는 이유다.

 

언제나 극점을 추구하는 그녀의 정신은 평범한 일상이 주는 권태를 참을 수 없어 했을 것이다. 찰라처럼 짧다 해도 섬광처럼 빛나는 그 무엇을 갈망했던 전혜린 이기에 그 눈빛이 광기로 번득였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녀는 젊은 제자와 헤어진 뒤,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 했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은 인습과 낡은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 아니였을까....

 

 

@ 2005/11/11 20:02  

 

 

[덧글1] 오, 좋은 읽을 거리 감사합니다.

몇가지 사소한 오류가 있네요. 전혜린은 서울법대를 중도에 파한 것이지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법대 교수가 아닌 성균관대학 독문과 교수였습니다.

 

[덧글2] 님, 반갑습니다.

서울대 강사 이력 때문에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졸업 후가 아니고 재학중 유학을 갔지요.

지적 감사합니다.

 

 

@ 2013/12/02 18:40   추천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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